-남해군수, 잘못된 관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까지-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시 여당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김두관 남해군수(43, 사진).



가장 보수적이고 친여적인 성향의 지역에서 전국 최연소의 기초자치단체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취임 이후 재선에 성공하면서 남해군을 전국적인 지방자치 모범도시로 만든 김 군수가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한 결정적 계기는 다름아닌 '기자실과의 전쟁'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기자실은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주민의 알권리를 거래하던 '밀실'이었다. 공무원들과 주재기자들은 주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그래서 비판과 폭로가 필요한 사안을 은밀한 거래를 통해 철저하게 은폐시켰다. '악어와 악어새'로 비유할 수 있는 행정과 언론의 이런 공생관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지방자치의 핵심인 주민의 정치참여와 공무원의 의식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김 군수는 1995년 10월 4일 전격적으로 기자실을 폐쇄했다. 음성적인 촌지 형태로 지급되던 신문 홍보비와 계도용 신문 구독료도 전액 삭감시켜 버렸다.



당장 다음날부터 지방일간지 지면에서 남해군수 동정과 남해군 소식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에 김 군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남해군 행정을 비난한 신문기사 스크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했다.



기자실 폐쇄 이후 6개월 동안 무려 200건 이상의 비난성 기사가 쏟아졌다. 남해군이 잘한 것은 쓰지 않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크게 쓰는, '보복기사'였다. 기자들이 사석에서 "김 군수, 어디 선거 때 한번 보자"고 경고했다는 소문도 끊이질 않았다.



"주로 비방성 기사가 많았지만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행정력을 키워주는 '보약'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난 언론과 행정이 일정한 긴장관계를 가지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나 지역주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의 비이성적 보도태도는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됐다. 당시 이 지역의 최대 이슈였던 현대제철 유치논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방적인 보도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현대그룹이 남해군 바로 곁에 있는 하동군에 제철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남해군은 곧바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저지투쟁에 나섰다. 청정해역인 남해안 일대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보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김 군수가 그 선두에 섰다.



반면에 하동군과 경상남도는 현대제철 유치운동에 나섰다. 대구에 위천공단이 들어서면 경남지역 환경이 파괴된다면서 전도적 차원에서 반대했던 경상남도가 이번에는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율배반적인 주장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더욱이 현대제철이 들어설 경우 발생되는 오염물질의 총량이 당시 광양만의 10여개 공단에서 배출되는 양의 1.5배에 이른다는 환경부의 연구보고서마저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따라서 신문지상에서의 여론으로는 김 군수가 코너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기자실, 즉 언론과의 전쟁은 공무원들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공무원들은 작은 실수라도 언론이 그냥 두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감을 가지고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김 군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관치행정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의 의식을 자치행정에 걸맞게 변화시켜 나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남해군 주민들도 김 군수를 지지했다. 당시 일부 공무원들은 언론과 싸워야 손해만 본다면서 타협할 것을 권유했지만, 김 군수가 단호하게 거부하고 초지일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주민들의 탄탄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8년 지방선거에서 김 군수는 '언론과 싸우고도'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주민들이 김 군수와 언론의 갈등관계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복성 비판 기사는 전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의 시민단체와 지식인들도 김 군수의 원군이 돼 주었다. '파워인터뷰', '성공시대', '100분토론' 등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김 군수는 '용기있고 능력있는 행정가'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기자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김 군수는 자치행정에서도 모범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군수 관사를 없애고, 그 자리에 민원인 전용 주차장과 느티나무 쉼터를 조성했다. 군수실의 벽도 투명한 유리로 바꿨다. 공개행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국에서 최초로 민원공개법정도 도입했으며, 환경부로부터 환경시범도시로 지정받기도 했다.



기자실 폐쇄 6년.

신문과 방송에는 이제 남해군과 김두관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기사가 더 이상 실리지 않는다. 지리한 갈등과 대립의 과정을 거쳐서 이제 '생산적인 긴장관계'가 정립된 것이다.



남해군은 정기적으로 '기자 브리핑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기자가 브리핑에 직접 참석하지 않는 신문에는 '행정 공고'를 하지 않는다.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기자의 의무라는 것이 남해군의 확고한 신념이다.



'기자실과의 전쟁'이라는 남해군의 실험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태이다. 아울러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전국에서 최초로 경남에서 '계도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계도지란 지방자치단체가 홍보비 명목으로 예산을 따로 만들어 신문 값을 대신 내주고 새마을 지도자나 이장에게 무료로 신문을 배포하는 것을 말한다.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뒤 곧바로 실시한 언론통폐합 이후 자리잡은 관행이다.)



남해군과 <진주신문> 등의 선도적인 실천, 경남민언련 등 시민사회단체의 열정적인 노력 끝에 거둔 성과다.



'기자실과의 전쟁'. 그것은 다만 지방일간지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두관 군수의 생각이다.



그는 1996년 월간 <말>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미 '언론권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우리는 김 군수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기자실 문제가 한국언론 전체의 문제를 풀어내는 열쇠임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군수가 5년 전에 한국언론에 대해 했던 말을 '기자 선생'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언론은 권력기관인가. 이 물음에 자신있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언론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누군가는 한국언론을 '하이에나'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하이에나는 살아있는 짐승의 고기는 먹지 않고 죽은 고기만 먹는다.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만 보더라도 이 말이 지나친 비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2.12 반란과 광주학살을 주도한 전두환씨가 결국 수감됐다. 신문과 방송은 전씨의 연희동 골목길 성명발표에서부터 안양교도소 수감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열의를 보였다. 1980년 신군부 탄생과 5공 출범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언론은 지금 전씨의 죄를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다.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전두환 일파의 구속처벌을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을 불순세력으로 '매도'하느라 침이 튀도록 목소리를 높였던 언론. 그들이 이제 그 입으로 5월 금남로에서 산화해 간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광주시민들을 '난동자'로 규정했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과거청산'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한 번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할 수도 있으련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난 과거를 반성한다고 고백하는 신문이나 방송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언제 죽은 고기가 되어 '하이에나'에 잡아먹힐지 알 수 없다. 언론이 이번 기회에 올바로 서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요구에 속한다."



월간<말지> 정지환 기자 jhjeong@digitalmal.com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 실린 기사로, 본사가 소속돼있는 <바지연>과의 기사교류협약에 의해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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