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피어난 작은 꽃



봄 햇살 가득한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생각나는 아이가 하나 있다.



10년 전 내가 칠보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1학년 담임을 맡아 처음 학급에 들어갔을 때 반 아이들 중 유난히 입술이 파랗고 얼굴빛이 창백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건강이 안 좋은가 보구나.'라고만 생각하고 신학기 업무에 바빠 일주일쯤 지날 때였다. 체육부에서 허약자를 조사한다기에 학급에 가서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고 아이들을 둘러보니 한쪽에서 슬그머니 손을 드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그 아이였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가하고 물어 보았더니 어려서부터 심장병을 앓아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시간에는 줄곧 앉아 있기만 했다는 것이다.



가정형편을 물어보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남의 집일을 거들며 그날그날 품삯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그 후로 그 아이를 지켜보는 나는 안타까운 마음 뿐 어떻게 해 볼 길이 없었다.



그저 과목 선생님들께 부탁하고 그 아이를 잘 봐 달라는 말 뿐, 특히 체육선생님에게서 체육수업은 받지 않아도 된다는 특혜(?)만 얻어낼 수 있었을 뿐.

그렇게 몇 달을 지내오던 중 뜻밖의 공문이 날아왔다. 「어린이 심장 재단」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무료로 수술해 줄 대상을 찾고 있으니 해당자가 있으면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전국적으로 조사하는 것인데 그런 아이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평소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터라 그 아이의 어려운 가정형편, 학교에서의 힘든 생활 등을 적은 담임의견서와 진단서를 첨부하여 서류를 제출했다.



그 공문을 보낸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리고 있을 즈음 그 학생이 무료수술수혜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무실에서는 무슨 큰 복권에나 당첨된 듯한 흥분된 분위기였고 반 아이들도 한껏 축하해 주었다.



드디어 그 아이가 전북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 교직원과 학생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교내에서 모금운동을 벌여 적은 돈이나마 우리들의 마음을 모아 전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약 한달 여 동안의 입원생활을 끝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던 날, 우리 교실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아이들은 풍선을 매달아 교실 안을 꾸미고 칠판 가득히 환영의 메시지를 적어 놓고 꽃다발도 만들어 그 아이에 퍼지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그 아이는 차츰 좋아져서 2학년이 되어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체육시간에도 참여할 수 있을 만큼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복도에서 나와 마주칠 때면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눈빛에서 내게 뭔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그 아이가 졸업을 며칠 앞두고 내게 찾아와 책상 위에 뭔가를 놓고 허겁지겁 나가 버렸다. 포장을 뜯어보니 예쁜 열쇠고리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제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신 분이세요. 선생님 은혜 잊지 않을 게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편지와 함께.



졸업 후 몇 통의 편지가 더 날아왔었다. 그러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난 후로는 소식이 끊어졌다. 그 아이 성격으로 내가 전근간 학교까지 찾아내서 편지를 보낼 만큼 활달하지는 못했으니까 마음은 있어도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그 아이도 성인이 되어서 어디선가 제 몫을 다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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