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시세는 없어도 에미품에서 젖먹는

새끼들의 모습을 보면 마냥 행복합니다"

오전 11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랴부랴 용지면 신정리 우림축산에 도착, 무심코 취재차량이 농장안으로 진입했다.

이때 멀리서 손을 내저으며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온다. "구제역 방역을 위해 차량출입을 통제한다"며 차량를 후진케 하고 자리를 소독한다.

구제역이 심각함을 비로소 인식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농장에 걸어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 아까 그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라고 하기엔 너무 젊게 보이는 이 농장 주인 김창수씨(40)의 부인인 김광자씨(38)였다.

역시 방역을 위해 비닐장화를 신고 김창수씨의 안내를 받으며 농장을 둘러봤다.

철저한 관리로 3700두 사육

갖난 돼지새끼들이 어미젖을 빨고 있는 분만사 뒷편으로 축분건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 돈사에서 자동시설(스크레파)로 모여진 돈분은 이곳에서 왕겨와 섞여 20일 가량 발효된 후 건조과정을 거쳐 바로 비료공장으로 가기때문에 축산폐수에 의한 오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게 김창수씨의 설명이다.

8동에 총 2천여평으로 구성된 축사는 돼지우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깨끗했고, 모양은 비슷하지만 각기 역할이 달랐다.

태양열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있는 '이유자돈사'는 최신설비로 갖난돼지에게 최적의 생육여건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은 성장에 따라 3번의 축사이동을 거쳐 출하된다.

'교배사'에는 무게가 300㎏에 이르는 육중한 숫돼지 8마리가 모돈 330마리에게 발정기마다 우수한 종족을 번식한다.

요크셔와 랜드레이스 품종의 1대 교잡종인 모돈 330마리에서 번식되는 돼지들은 전량 이곳에서 사육되고, 160~170일간의 사육기간을 거쳐 체중 110㎏이 되면 선별을 통해 월 2회 목우촌으로 출하한다.

현재 이곳의 사육두수는 총 3700여마리로 월 400~500두를 출하하며, 연소득은 1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죽은 돼지 땅에 묻고 울기도

물론 김창수씨가 처음부터 대 농장의 주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2학년때 부친의 건강이 좋지않아 6년간이나 짝사랑했던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고 재학시절에는 학생회 임원으로 학생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양계와 양돈을 했던 부친을 따라 축산을 시작, 축사를 한동 한동 손수 건축해가며 규모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축사를 건축하기위해 7천평의 땅을 밀어 다져 놓았는데 눈이 내렸습니다. 넓은 땅에 하얀눈이 쌓이는 모습을 보고 감격에 겨워 잠자지 않고 밤새 눈길을 걸었죠" 김창수씨는 당시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한 듯 잠시 말을 잊는다.

"집사람과 정성을 다해 애써 키운 돼지들이 질병으로 50%이상 죽을 때면 죽은 돼지를 땅에 묻고 부부간에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돼지가 새끼를 날때면 집사람이 막사에 신문지를 깔고 어미돼지와 같이 자곤 합니다"라며 좌절의 순간과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한다.

부인 김광자씨도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남편의 뜻을 쫒아 시골생활을 자처했다.

"애 아빠가 너무 착하고 성실해요. 남편이 고생하는데 마땅히 도와야죠..." 간호사의 하얀까운에 도시생활을 그려볼 듯한데도 김광자씨는 남편곁에서 마냥 돼지똥이 더럽지 않다.

짐승에 대한 사랑과 부부애 바탕

이들 부부가 주위의 칭찬을 받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맘이 여린 김창수씨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불우시설에 돼지를 기증하고 사료값 치를 돈 370만원을 주변의 어려운 교통사고 환자에게 선뜻 내주는가 하면 자활봉사센터에서 노력봉사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 큰 낭패를 겪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영현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 희영이를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겠단다.

이들 부부가 오늘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돼지똥에 범벅이되어 생활하고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생활에 안정을 찾게 된데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돼지를 돌보고 서로를 아껴주는 부부애가 바탕이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저희는 이일에 적성이 맞는 것 같아요. 돈만 생각하면 짐승 키우기 어렵습니다. 돼지시세는 없어도 에미품에서 젖먹는 새끼들의 모습을 보면 마냥 행복하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어요"하면서 돼지새끼 한마리를 끌어 안는다.

날로 각박하고 어려워지는 현실속에서 경제를 떠나 이들 부부는 진정한 부자였다.

홍성근  hong@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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