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미륵도량의 금산사 정문앞에 한여름 중순의 폭우가 걷히고 단아하게 들어앉은 찻집의 미닫이문을 밀치자, 알수없는 차들의 내음이 향수를 자극해 왔다.
차 한잔을 마셔 단박에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신선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날수 없겠지만 주차장에 차를 두고 십여분 걸음덕에 다다른, 안식이며 근심에서의 일탈을 얻을수는 있겠다 싶었다.
산중다원, 지은지 삼년째 되는 찻집은 서른중반의 여주인 송순녀씨가 지기로 앉아 손수 개발한 다원불패차(쌍화탕)를 선뜻 권한다.
금산사 월주스님이 전국최고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은 다원불패차는, 김지하 시인이나 한승원 전감사원장 등이 단골로 정해놓고 마실 정도로 맛과 효능면에서 탁월하다.
그래서 전국 어느 다원에서도 맛볼수 없는 여기만의 독특한 차로 불패(不敗)의 이력을 지녔다보다.
원광대 국문학과를 나온 주인 송씨는, 그 자신의 불가구도를 이곳의 차를 통해서 얻는다고 할 만큼 많은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 봄의 매화꽃이 붉은색 오미자차 위에 둥둥 얹혀 나오는가 싶더니만 이번엔 투박한 옹기잔 안 가득, 진한 향기를 머금은 쌍화탕 즉 다원불패가 해탈의 맛을 드리우고 백년묵은 노송탁자에 자리한다.
이윽고 맑은 미소로 입을 연 송씨는 "이곳은 기다림"이라고 운을 뗀뒤 "올때는 다버리고 와라"라는 주문을 낸다.
산사의 아침 풍경소리나 목탁소리 가득한 나뭇잎들 사이로 '무소유'의 불법이 가르치는대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의 삶을 지니란 뜻일게 분명하다.
그녀의 뜻대로 여기를 찾는 손님마다의 시선에는 탁자가득 피어나는 차의 향기와 주홍빛 연꽃등이 무심코 배어있어, 앉아있는 잠시지만, 그 사이사이에 피안의 영겁은 도시민의 묵은 애증을 잊게해주고 있었다.
사실 산중다원은 금산사측에서 불교의 포교를 목적으로 지은 찻집이다. 아울러 스님들 스스로 정진과 깨달음의 중간중간에 차한잔의 뒤돌아봄을 지닐수 있는 경내 유일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속의 사람과 절간의 스님이 만나며 공감하는 어떤 적절한 '선의 세계'일지 모를 일이다.
산중다원의 차림표는 주인 송씨네의 글맛마저 지니고 있다. 매실차는 <매화꽃향기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주문되고, 오미자차는 <묻노니 자네는 왜이리 고운가>로 적혀 있으며, 솔잎차는 <산은산 물은물 솔잎은 솔잎이로다>로 불리워진다.
다만 산사에 있는 관계로 차값이 만만치가 않다는 점이 부담으로 남겠지만 그 값이상으로 무엇인가를 덜어내고 간다던지 또는 그만큼 얻어간다면 그뿐, 세상의 돈으로 칠수 없는 형이상학의 위로를 다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나서는 문가에 눈을 들어 바라본 세상은, 모악의 품에 안겨 참새의 혀처럼 어리디 어린 작설의 순한 녹차같이 온통 푸르른 바람결로 이룬 나즈막함이다.
오병환 기자 obh@kimjenews.co.kr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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