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북의 농민들이 금강산에서 통일 시대의 새 장을 열다"


이창한/김제 농민회 사무국장


지난 7월 18, 19일 남과 북의 농민 1300여명은 "6.15남북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 농민 통일대회"(이하 남북 농민 통일대회)를 열었다.


남과 북의 농민들의 첫 만남은 지난 2000년 10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은 조선 노동당 창당 55돌 경축 행사가 있었던 날로 남쪽 사회단체 대표 43명이 북의 초청을 받아 방북을 하였었다.


전국 농민회 총연맹(의장 정광훈, 이하 전농) 4명의 대표가 자리에 함께 하여 이북의 농민조직인 조선 농업 근로자 동맹(이하 농근맹) 간부들과 만남을 가졌다. 남과 북 농민 대표들의 역사적 만남은 그동안 못 다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남북의 농업현황과 지리적 조건, 기후, 다양한 농사지식, 통일된 이후의 민족농업 등에 대하여 많은 대화가 오갔으며 결론적으로 지속적인 교류의 필요성을 함께 공감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쪽의 전농 대표단은 당시 북의 농업이 홍수피해는 어느 정도 극복하였지만 농자재 부족과 기후조건(냉해, 서리 피해 등)에 따른 피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았다. 이에 도움이 되고자 "못자리용 비닐 보내기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고 이후 전농에서는 3개월 동안 모금된 4억여원을 모아 북측에 11,055통(284톤)의 비닐을 보내기도 하였다.


-남한농민 700명 참가-


이와 같이 농민들은 통일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이번 '남북 농민 통일 대회'는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 행사는 애초에 단오절 하루 뒤인 6월 26일에 치뤄질 계획이었으며 명칭도 '6·15 남북 공동선언 기치 아래 민족 자주·대단결을 위한 남북농민 통일단오 명절놀이'였으나 100년에 한번 찾아온다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일정이 7월 중순으로 연기되었다.


이번 '남북 농민 통일대회'에는 전국 농민회 총연맹 소속 700여명의 농민들이 참여하였으며 김제 지역에서도 김제 농민회 7명, 김제 여성농민회 2명 등 9명이 함께 하였다.


이 행사는 7월 18, 19일 양일 간이었으나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 참가자들은 농사일이 바쁜 와중에도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북한 농민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7월16일 저녁에 모여 7월20일 아침에 귀가하는 강행군을 하였다.


전날 저녁 김제 농민회 사무실에 모여 준비중이던 참가자들은 17일 새벽 3시30분 깊은 어둠속에서 속초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전농 소속 각 지역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모인 가운데 속초항에서 사전 발대식을 갖고 '설봉호'에 승선하였다. 배안은 참가자들로 북적북적하였다. 많은 이들이 갑갑한 선실을 벗어나 갑판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해금강이 보인다"-


뱃길로 서너시간을 왔을까?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북한 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게다가 보이기 시작한 땅은 기암괴석과 푸르른 숲이 어우러져 참 아름다웠다. '우리 조국의 산천은 어디나 참으로 곱다'는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그곳의 지명이 '해금강'이라고 말하였다. 너무도 아름다워 '바다의 금강'이라고 했다는데 그에 걸맞는 풍경이었다.


저녁 8시경 장전항(고성항)에 도착하였고, 저녁 식사 후 12시에 이르러서야 취침을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행사장으로 향하였다. '남북 농민 통일대회' 행사장은 북한의 유명한 휴양소 중 하나인 김정숙 휴양소의 운동장이며 현대 측이 개발한 금강산 관광지인 '온정리'가 그곳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밑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명소였다.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북녘 땅을 실컷 보게 되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좀더 자세히, 좀더 정확히 보려고 애를 썼다.


북녘의 농촌은 우리의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등교하는 아이들 무리며, 언니, 오빠들 뒤를 따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젊은 이, 기찻길을 따라 걷는 인민군 등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가뭄 때문인지 작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밭에 심어져 있는 작물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옥수수, 가지, 고추. 그리고 논두렁, 밭두렁 빈틈없이 알뜰히 심겨진 콩. 남이나 북이나 부지런한 농민의 모습이 논과 밭에서 그대로 들어났다.


7월 18일 오전 9시,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흰 티셔츠에 운동복 바지, 같은 복장을 한 남측 참가자들은 조별로 (1조-제주, 광주전남. 2조-경기, 경남, 충북, 3조-강원, 전북, 여농, 4조-경북, 충남) 줄을 서서 입장을 하였는데 북측 참가자들과 "반갑습니다"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섞여 공동입장을 하였다.


-단일기 계양-


공동입장 후 첫 순서는 단일기(통일기) 게양이었다. 북쪽 여성 셋과 남쪽 여성 셋이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단일기를 들고 나와 행진을 한 후 게양을 하였다.


곧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 농민 통일연단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남과 북의 노래공연과 북측의 여러 가지 문예공연이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김길화의 '도라지' 옥류금 독주였다.


옥류금은 북에서 만든 민족악기인데 전통악기를 개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옥류동 물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고 하여 옥류금이라 이름 붙여졌다는데 전통악기와 현대적 음이 조화를 이룬 악기라고 한다.


오후 2시30분 경부터 체육대회(민속 체육 및 유희 오락 경기)가 시작되었다. 남과 북이 반반 씩 섞여 '자주'팀과 '단결' 팀을 구성하여 대결을 벌였다. 줄넘기, 사람 및 물건 찾아 달리기, 윷놀이, 씨름, 밧줄 당기기, 조국통일 이어달리기 등 정겨운 놀이판이 벌어졌다. 특히 씨름판에서는 우승자에게 '황소'를 주었던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여 꽃 장식을 한 누렁송아리가 실제 등장하였다. 또 줄다리기 도중 줄이 끊어지기도 하였다. 모두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사회자가 분단도 이렇게 딱 두동강 내버리자고 하여 더욱 웃음을 자아냈다.


윷놀이는 거대한 윷판을 운동장 한가운데 그려놓고 인간 말이 움직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윷도 사람 키만 한 것을 던지는데 놀이방식이 신선하여 참가자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우리의 전래 놀이를 여러 사람이 어울릴 수 있게 재창조한 시도가 높이 평가되었다.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이 다 운동장으로 나와 '인간 기차놀이'를 하였다. 남과 북의 농민들이 한데 뒤섞여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는데 폭염 속에서도 다들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북한의 농업-


다음날인 19일은 남과 북의 농민들이 함께 금강산 등반을 하였다. 목적지인 구룡폭포를 향하여 등반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주로 농사에 관한 이야기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주제가 되었다.


북한에는 협동농장과 국영농장의 형태로 농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 협동농장은 농장원들의 공동소유, 즉 협동적 소유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영농장은 전인민적 소유를 이룬 농장이라고 한다. 하나의 군은 면이 없이 20개 정도의 리 단위로 구성되며 리의 인구는 대략 이천명 정도 되는데 이중 노동력은 6∼700명 가량 된다고 한다. 바로 이 리 단위가 하나의 협동농장이 된다. 그리고 리 당이 있고 군에는 군 경영위원회가 있어 여기서 모든 것을 총괄하는 농업체계를 갖고 있다.


협동농장은 작업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작업반은 또다시 분조로 나뉘어 지는데 분조 성원은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나 다름없다고 한다.

농사일도 분조 별로 하는데 일을 마치고 나서 그날그날 일의 종류, 노동 강도에 따라 사람마다 노력공수를 준다고 한다. 이 노력공수를 연말에 모두 취합해서 그에 맞게 분배를 하는데, 매일 작업을 마치고 평가와 토론을 거쳐 노력공수를 정하기 때문에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공정한 틀이 있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일하고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하였다.


민족의 식량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북측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깊숙이 빠져든 우리 농업의 현실이 떠오르고 빚더미에 시달리다 농약을 마시거나 밤보따리를 싸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 농민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음이 영 무거워졌다.


특히 북한은 '이중곡가제'를 철저히 시행하여 농민들에게 '64전'에 수매한 쌀을 '8전'에 판매한다고 한다. 생계비에서 쌀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작아 쌀값에 대해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거의 나라에서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배급' 해주는 형태라고 한다.


북한에 대해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북한은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구분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정책적으로 생필품은 아주 싼 가격에 공급하고 사치품은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판매한다고 한다.


농민들도 공장 노동자들처럼 하루 8시간 노동이 정해져있지만 농사일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나 모내기철에는 아침 6시부터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농한기에는 좀더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특히 최고의 농번기인 모내기철에는 공장근로자나 인민군들도 농촌일손을 돕는다고 했다. 또 사무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매주 금요일 논이나 밭, 공장의 생산현장으로 출근해서 노동을 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장의 어려움을 알게되고 관료주의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민도 '퇴직' 개념이 있어 남자의 경우 60세, 여자는 58세가 되면 협동농장에서 일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생계를 보장해 준다고 한다. 그 이후에 협동농장에 나오면 또 그에 맞게 보수를 쳐준다고 했다.


그밖에도 농민들은 일요일날 쉬지 않고 1일, 11일, 21일 하는 식으로 열흘에 한번씩 쉰다고 했다. 개인 텃밭도 있어 대략 개인당 30평정도 된다고 한다. 여성들의 경우 아이를 출산하면 산전 산후 150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고 한다. 북한의 여성들은 대개 맞벌이인데 탁아소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육아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함께 지고 있어 남쪽 여성들처럼 직장생활이냐 가정생활이냐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북측 참가자들은 남측의 통일운동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가장 큰 고민이 "남북 통일"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정도로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북한에서는 학습과 토론이 생활화되어 있는데 통일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학습을 하고 많은 토론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북측 참가자 어느 누구와 이야기하여도 마치 '통일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였다.


그토록 절실히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 앞에서 통일에 대한 바램은 있어도 적극적이지 못한 우리의 태도가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신이 팔려서 목적지에 이르도록 금강산의 요모조모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스쳐보는 것만으로도 금강산은 과연 천하의 명산이었다. 풍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구룡폭포는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절경이었다. 150미터 높이의 바위 꼭대기에서 74미터의 폭포수가 흘러 내렸다. 바닥의 바위가 13미터나 패여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으니 그 장중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남과 북의 농민이 연신 어깨를 걸고 사진을 찍어대 자연경관만큼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연출하여 감동을 자아냈다.


금강산은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인공적인 환경조성이 거의 없었다. 주어진 자연환경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최선의 정책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남측 참가자 모두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장전항의 깨끗함은 남측 어느 항구에 비길 바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바닷가 특유의 역한 비린내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북측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 되도록 건물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농가주택은 물론 그 유명한 '김정숙 휴양소' 조차도 시멘트벽에 아무런 색이 칠해지지 않았다. 형형색색 화려함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는 어쩐지 초라해 보이고 마무리가 덜 된 듯 이상하긴 하였지만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그 의지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였다. 또 우리가 이동한 어느 곳에서도 작은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금강산 계곡 바위틈에서조차도 깨진 유리병이나 썩은 과일 조각, 담배꽁초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온정리로 돌아와 폐막식을 하였다. 전농 정광훈 의장님의 폐막연설이 있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농민통일대회가 남북 농민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금강산과 김정숙 휴양소에서 성황리에 치러진 것은 남북농민 모두의 노력이며, 남북동포 모두의 자랑이라고 여겨집니다." 또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해 행사계획을 했었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해 수차례 연기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북 농민 모두가 힘을 모아 성사시켰습니다"라고 우리 모두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다음은 전국 여성 농민회 총연합 김순옥 회장님의 폐막연설과 북한의 농근맹 승상섭 위원장 폐막연설이 있었다.


폐막식을 마치고 전농, 전여농, 농근맹은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이정표로 확고히 틀을 잡고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적극 떨쳐나서며 외세의 전쟁대결정책과 일본의 역사왜곡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강력히 벌려 나갈데 대한 결의가 확인되었다. 분단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농민통일대회는 남과 북의 농민들의 단합된 힘을 크게 과시하였으며 농민들도 노동자들과 함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실현의 당당한 주력군임을 내외에 선포하였다."


짧은 만남으로 인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조국통일'에 대해 굳게 약속을 하고 돌아와야 했다. 통일은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남과 북의 농민들은 이에 첫걸음을 내딛었으며 이는 통일운동사에 역사적 만남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제 농민회는 나라를 살리고 농민을 살릴 통일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오는 8월 통일 대축전이 준비되고 있다. 이는 통일을 염원하는 온 국민의 잔치가 될 것이다.


김제 지역에서도 뜻있는 단체들이 힘을 모아 지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의 '통일 한마당'을 준비중이다.


김제 지역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협력이 있다면 보다 뜻깊은 지역 통일행사가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사진은 필자 이창한(김제농민회 사무국장)씨와 부인 박선민(김제여성농민회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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