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소망은 어머니 곁에 있는 것입니다"

5·60대 우리들의 6.25세대들이 다 그렇듯이 미국 서남부 한인회의 서영석(59세·LA거주)회장의 체구는 퍽 왜소하다.



아니 작은 체구는 그렇다 치고 머릿결마저 세월에 바래 온통 백발인 그가, 고향을 찾아본다고 이역만리 길을 날아와 단걸음에 새벽기차를 타고, 기어코 고향땅을 밟는 모습을 보니 여느 촌로처럼 생김은 분명 구수한 진봉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정부가 동시에 인정하는 재미교포사회의 인정받던 의사이자 이민자들의 대표적인 리더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육십평생 그가 써 내려간 이력서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이며 대통령표창이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시와 LA 시의장 및 상원의원의 표창이, 그가 한 일에 대한 수고를 말하는 것처럼 줄줄이 적혀 있다.



이 모든 것을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는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것일 게다.



그런 그가 지난 31일, 모교인 진봉초등학교를 찾았다. 모교를 향하는 차속 내내, 40년전의 기억을 더듬더니 급기야 정문에 서서는 잠시 얼굴이 붉어진다.



"교정에 플라타너스 나무가 많았는데.."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그의 눈가에는 얼핏 물기가 스쳐 지나간다.



1955년 진봉초교를 졸업한 서영석 회장은 이리 남성중·고와 전남대 의대를 거쳐 지난 1972년 도미하여 30년 마취과 개업의사로서 명예와 부를 쌓은 다음, 재미교포를 위한 재외동포 특례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이중국적 취득'에 대한 대내외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국적은 한 개인이 2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로 나눌수 있다.



선천적 이중국적자는 태어날 때부터 2개의 국적을 함께 지닌 것이고 후천적 이중국적자는 하나의 국적을 갖고 살다가 별도의 사유로 인해 또 다른 국적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에 대해 서회장은 "이중국적을 주는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게 하고, 해외에서도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를 깨닫게 해주는 절대적인 계기를 준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조국과 고향을 잊지 말라는 그만의 철학에서 기인한 믿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출발지인 진봉초교를 찾았으니 그가 겪는 감흥이야말로 말로 다 담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서회장은 지난 4월, 진봉초교에 교기를 새로이 제작하여 선물했으며, 이번에는 모교에 각종 도서 282권을 기증한 터였다. 이에 이 학교 학생인 5학년 이찬미(여·12세)학생과 이훈(남·10세)학생이 지난 5월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서회장이 다시 모교에 들러 이 두학생에게 미국에서 가져온 학용품을 선물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래도 고향사람이 좋다"라는 말이 남의 일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그의 모교방문에 박건세 진봉초교 교장과 이필희 동문회장, 그리고 최창길 장학회장은 시종일관 환대로서 맞아 주었다.



특히 진봉초교측에서 전교생에게 잠깐의 강연을 부탁하자 "학교 다닐 때 장학사나 외부손님이 오게되면 툭 하면 전교생 강연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수업을 계속하게 놔둬라"라고 고사했지만 학교측의 끈질긴 요청 끝에 수락한 강연에서 그는 "예전 우리 때 보다 건강하고 총명해 보인다"고 전한 뒤 "도시학교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꿈을 키우면 도시학생 못지 않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부탁했다.



특히 그는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정직·성실·근면·애국·애족의 정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의 좌우명인 덕불고(德不孤)처럼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외롭거나 초라하지 않다"고 어린 후배에게 격려를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어 모교를 뒤로하고 잠시 나선 거전리의 선영참배에서 그는 "저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고향의 어머니 곁에서 지내는 것"이라고 낮은 톤의 말을 잇는다.



자신이 의사가 되기 위해 수업 중이던 해, 의사의 실수로 돌아가신 어머니였지만 그 실수한 의사를 용서해주던 아버지가 "내 아들도 의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던 그 담담한 기억이 서회장의 발을 붙잡기 때문이다.



3시간여의 짧은 고향방문이었지만 거전리포구와 심포들녘을 돌아서 나오는 그의 발걸음이 연신 뒤로 향하지만, 그가 행한 좌우명처럼 그가 믿는'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젠가는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본 기자는 믿고 싶었다.



오병환 서울주재기자 embago6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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