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란]은 그런 영화이다. 개봉관에 가서 봐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한 영화이다. 엊그제 비디오샵에서 눈에 띠어 잡아온 이 영화를 보는 처음부터 평범한 영화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부부를 내내 집중하게 하면서 끝내는 눈물을 떨구게 만든 영화이다.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물이 결코 아니다. 조폭이 등장하지만 요즘 신물나게 우려먹는 조폭영화도 절대 아니다. 우리 주변의 폭력적 현실을 섬뜩하게 그려내면서도 마치 사리처럼 존재하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춰진 자아와 존엄성을 꺼내어 보여주기도 하는, 사실적이며 역설적인 영화이다.
사랑이라는 소재로 엮어진 소설이나 영화들이 수 없이 많지만 이 영화속 [파이란]의 사랑만큼 우리 가슴을 때릴까? 젊은 베르테르, 마농페스꼬, 캬추사, 그리고 저 바보 삼룡이의 사랑도 다 있지만, [파이란]의 사랑은 휠씬 더 사실적으로 우리 가슴을 파고든다.
중국에서 고아가 된 [파이란]은 친척 주소 하나 가지고 한국에 온다. 그러나 이미 그 친척은 카나다로 떠나버린 후이다.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파이란], 이 세상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파이란]...
직업소개소를 통하여 몸은 팔려 간다. 불법 체류자 신분을 막기 위하여 서류상으로 혼인신고를 하게 되는데, 그 자가 바로 강재이다. 이 강재는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을 정도의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취급하지만 자신도 익히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핵에 걸려 있어서 [파이란]은 술집으로 퍌려가지 못한다. 그 대신 도시 변두리의 세탁소에 의탁된다. 이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파이란]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세탁!]을 외친다.
자기와 생의 인연고리를 가진 사람은 단지 서류상의 남편인 강재 뿐이다. 얼핏 스치듯 한 번이나 만났을까? 서로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는 강재를 사랑하게 된다. 사고무친의 이 세상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인지 모른다.
스치듯 얼굴만 보았을 뿐인 사람에 대한 [파이란]의 사랑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파이란]의 죽음 이후 쓰레기같은 인간 이 강재는 자아를 찾게 된다. [파이란]의 사랑과 죽음이 가져온 강재의 자아회복은 단 몇 일 뿐...그 댓가로 그도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영화는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극히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도 하다.
영화 초반에 조금은 어색했던 최민식의 연기는 후반부로 가며서 빛을 발한다. 역시 최민식이다 싶다.
몇 년 만에 보는 멋진 영화인가?
수십 편의 허접한 영화를 보면서도 이러한 영화 한편을 보게되면 영화를 사랑하게 된다. 송해성 감독에 박수를 보낸다.
송기삼 (김제치과원장)
중년별곡 www.midlife.pe.kr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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