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이나 [홍등]으로 잘 알려진 장 이모 중국 영화감독의 [책상서랍 속의 동화]는 세미 다큐적인 영화이다. 거의 모든 등장 인물들이 중국 깡촌의 실재 인물들이며, 영화를 찍을 때도 미리 시나리오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 웨이민치에게는 여타 영화 주인공들에게서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적다. 오래전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박한 얼굴의 주인공이다.



영화나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험이 없던 시골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하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경이스럽다.



배경은 중국의 어느 시골, 쑤시엔 초등학교이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궁핍한 곳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임시교사 웨이민치가 도시로 돈벌러 떠난 장휘거를 찾아 나선 것에 대해서 나는 언뜻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선 목자를 떠올렸다. 설마 장 이모 감독이 성경에 나오는 이 대목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웨이민치가 임시교사로 온 것도 그리고 장 휘거를 찾으러 나선 것도 다 돈 때문이다. 한달간 병든 부모를 방문하러 가면서 웨이민치에게 당부한 내용은 단 한 명의 학생도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지키면 보너스로 10원을 더 준다고 약속을 했다. '단 한 명의 학생도 없어져서는 않된다' 라는 뜻의 영어 'Not one less'가 실재 영화 제목이다.

선생님으로서의 능력이나 자질이 전혀 없는 웨이민치. 선생의 역할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아이들에게 선생으로 보일 리도 없다. 오직 아이들이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데에만 마음이 있다.



엉망진창의 며칠이 흘러가는 중에 한 아이는 육상선수로 뽑혀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고, 최고의 말썽꾸러기 장휘거 마저도 어려운 가정 형편을 핑계로 갑자기 도시로 떠나버리고 만다.

육상 선수로 뽑혀가게 된 아이를 막지 못해 무력감에 빠진 웨이민치 선생은 도시로 떠난 장 휘거를 데려오려는 생각을 하고 마침내 이를 실행한다.

돈이 동기였을지라도 하여간 웨이민치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도시로 떠난다. 버스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임시교사 웨이민치는 어린 학생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아무리 윽박지른다고 없는 돈이 나올 턱이 없다.



인근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감동적인 헤프닝을 벌이기도 하지만 버스비 마련은 너무 어렵다. 할 수 없이 무임승차 하기로 하고 아이들이 바람잡는 사이에 몰래 차에 오르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버스에서 쫓겨 나게 된다. 걸어서 웨이민치는 도시로 간다.

이처럼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거룩한 목자는 심히 동기가 불손했으며 남아있는 어린 양들에게 돈을 갈취(?)하려 했고, 집단으로 노동력을 동원하여 버스비를 마련하려고도 했다.




이처럼 별로 거룩할 것도 없는 13살 초등학교 출신 임시교사 웨이민치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 장 휘거를 찾으러 도시로 갔다.

글쎄 도시로 가는 과정 어느 지점에서 아니면 시멘트 바닥처럼 차디찬 도시의 여정 어디에서 그 불손한 동기가 슬며시 사라지고 오로지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비장 해졌을까? 나는 이 점이 심히 궁금했다.



가오 선생님의 부탁 겸 명령을 계시처럼 받아들이게 된 웨이민치.
이렇게 인간이 변화했을까? 영화는 끝내 설명이 없어서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보너스 10원을 더 받기 위해서 웨이민치가 저 고생을 하며 장 휘거를 찾아다녔다고 보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성과 사회적 삶의 심연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들여다 보면, 우리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들이 모두 합리성을 근거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선지자가 될 인물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태어나는 것일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감히 이 영화를 보면서 '우연히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받아 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선지자란 개인적인 각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조되는 것일 것이다.

이 영화 어디에도 웨이민치의 각성을 확인할 만한 대사나 행동은 없다. 그저 물 흐르듯 우연히 선지자의 역할을 성공리에 수행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자 가오 선생님이 떠나고 없는 시골 초등학교에 아무런 능력이 없는 웨이 민치가 그 자리를 임시로 맡게 되는데, 사실 수학공부를 하는 장면이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등등의 모습을 보면 웨이민치가 선생 노릇을 하는 광경이 더 참교육에 가깝다. 왜 그럴까?

선지자건 지도자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 쉬우나 기실 그들은 웨이민치처럼 우리들 속에 섞여서 즉 우리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전통을 상징하는 가오 선생님의 계시, [단 한 명의 학생도 없어 져서는 안된다.]는 과거 중국의 사회주의적인 명제이다.

도시는 서구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가난한 시골 초등학교는 중국사회이다. 그렇다면 웨이민치는 누구일까?

중국 당국의 검열 틈바구니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영화를 줄줄이 만들어 내는 장 이모 감독의 영화에는 현재와 과거의 중국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스며 있다.

또 그의 영화들은 화려한 수식이나 기교가 적으며 줄거리 조차 아주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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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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