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한반도의 넋'으로 각종 추모사업 전개 활발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던져 / 차가운 바닥 위에 / 우리들이 메마른 가슴 위에 /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붉게 새겨놓고 떠난 / 어리석고 못난 사람...(중략) / 오늘따라 그가 남기고 간 어리석고 큰사랑이 가슴에 사무쳐 / 서울구치소 구석진 독방에 홀로 앉아 / 울며 / 다짐하며 / 이 글을 쓴다.' (문규현 신부가 조성만 열사를 추모하여 지은 추모시 중에서)

광복절인 지난 15일 전주해성고등학교 정문에는 한 청년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유가족과 동문, 천주교정의구현전주교구제단, 교우회원 등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된 이 행사는, 추모 당사자의 낯선 이름만큼이나 왠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화의 불꽃으로 스러져간 이 청년에 대한 남은 자들의 향수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날 제막한 추모비는 지난 2월 구성된 '통일역사 조성만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의 주도로 종교계 정계 교육계 법조계 노동계 재야 및 해성고 동문 등 1천2백여명이 추진위원으로 참여, 1천5백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모교 앞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그를 '부활하는 한반도의 넋'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러한 추모 움직임들 속에 그가 김제출신이라는 사실은 지역민의 긍지와 자부심을 부러일으키기 충분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조성만 열사, 그가 젊음의 고뇌로 방황하던 최루탄 냄새 가득한 80년대의 삶 속으로 가만히 들어가 보자.

5월 광주민중항쟁 8주기를 맞아 민가협 등 재야민주단체 주최로 열린 '양심수 전원 석방 및 수배 해제 촉구 결의대회'의 열기가 뜨겁던 1988년 5월 15일 오후 3시 40분경의 서울 명동성당, 갑자기 성당 교육관 4층 옥상에서 한 젊은이의 피맺힌 절규가 들려왔다. '양심수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 말이냐',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 등의 목소리가 핸드마이크를 타고 약 1분간 외쳤졌고, 이어 흰색 농민복을 입은 청년 조성만은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자신의 배에 내리꽂고 5장의 유서를 뿌리며 몸을 날렸다. 이내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조성만은 즉시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날 저녁 7시, 그의 스물네해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5월 19일 낮 서울시청 앞에서 치러진 조성만의 장례식 노제에 3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 1년전 시민항쟁 당시의 열기가 느껴지는 군중모임으로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룬 당시 야당의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김영삼 민주당 총재도 참가했다. 조성만이 중고등학교를 다닌 전주 도심을 지날 때와 망월동 묘역으로 떠나기 전 광주 도청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도 수만명의 시민들이 장례행렬을 뒤따랐다.

16년만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함께 1988년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으나, 5공 군사정권의 연장인 이 정부를 보며 국민들은 심한 허탈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 5공정권때 87년 6월항쟁을 겪으며 시민항쟁의 커다란 함성을 가슴에 품고 있던 민주화 갈망세력은, 무엇보다 직선제 정부의 출현으로 현실에 순응하며 무디어지는 국민의식의 장벽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터진 조성만 열사의 죽음은 다시 한번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각성시키게 된다. 그의 죽음으로 국민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고, 국민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조국 민주화의 불을 당긴 것이다.

1964년 12월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에서 공무원인 부친 조찬배씨와 김복성여사와의 사이에서 4남 중 둘째로 태어난 조성만 열사는 초등학교(용암초등)를 마치고 전주서중과 전주해성고를 거쳐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하면서 민주화 투쟁과 한반도 통일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

87년 전두환 정권에서 12월 대선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 데모와 관련 구류 10일을 살았고,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고귀한 피를 흘리게 된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서 통일논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그는 지금도 '통일열사'로 추앙 받는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죽음은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일이다.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영세명 요셉)였다고 하나 이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투신 당일 쓴 유서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그리스도가) 고행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라는 고뇌가 뭍어난다.

그는 이제 이곳에 없고, 그가 그토록 부르짖던 조국도 이직 허리가 잘린 상태이지만, 그 뿌리 피의 생명력은 너무나 강해서 조국 민주화와 통일 조국을 싹틔우는데 강한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지금 망월동 5. 18묘역에 묻힌 그의 넋은 문민과 국민의 정부를 지나 21세기에 민주·통일조국의 밤하늘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김익현  desk@kim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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