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장 남성훈

기자들에게 주어진 펜은 그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양성한다. 취재를 시작하면 1차원적으로 바라봤던 한가지 사건에 살이 붙어 입체적으로 변모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항상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넓게는 이념에 대한 다툼부터 좁게는 사사로운 개인적 문제까지, 도처에 산적해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보자들의 변호사가 되었다가, 때로는 누군가의 잘못을 엄중히 꾸짖는 검사가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이해관계속에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를 파헤치는 판사가 된다. 지금 기자가 들고 있는 이 펜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척이나 무거운 이유이다.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인데, 절대 쉬이 흩날리듯 써 내려가서는 안된다는 마음 뿐이다. 좁디 좁은 우리지역의 특성상 조그마한 단서에도 독자들은 가·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가명과 학교를 특정지으려 하지 않음을 밝힌다.

  이렇게 긴 서두를 꺼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써 내려갈 글이 10일 밤낮을 기자로 하여금 고뇌에 빠지게 했던 사실들이다. 이 글로 인해 누군가는 처절하리 만큼 잔인했던 기억을 곱씹을 수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혹은 현재 짊어지고 있는 죄책감의 무게가 더욱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바라건데 이 글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해도 맞은 사람의 기억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지난달 서울 여고생 관악산 폭행사건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피해자가 받았을 심적 고통에 국민적 공분이 일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청소년들의 사춘기 연령대는 더욱 어려지고 있고 신체발달, 정신적 발달 등이 빨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모든 것이 그들을 어리다고 할 수만은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5년부터 올해 7월 현재까지 우리시에서 학교폭력 형사처벌 건수는 총 63건으로 이 중 초등학교가 3건, 중학교가 5건, 고등학교가 29건을 기록했으며, 기타 성인과 관련된 사건도 26건에 달한다.

  죄종별로는 상해가 14건, 폭행·협박 등 31건, 명예훼손·모욕 및 공갈이 3건을 기록, 정보통신망 1건을 비롯해 성폭력은 10건이나 발생했다.

  이달 초, 수년전부터 또래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일명 왕따)를 당했다 밝히고 있는 A학교 학부모가 기자를 찾았다. 피해학생의 학부모는 최초 학급 내에서 삼삼오오 따돌림을 받기 시작해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결국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우울증에 이어 조울증 증세까지 보여 참다 못한 학부모가 꾸준히 학교폭력 관련한 교육을 실시해줄 것을 학교에 요청했지만 이를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따돌림은 계속됐고 피해자의 물건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신체 특정부위를 가격하거나 다른 친구들과 힘을 합쳐 인격모독적인 행위를 하는 등 그 강도가 점차 심해졌다. 학교는 수수방관이었으며, 급기야 피해학부모는 아이의 등교를 거부했다.

  문제가 커지자 사건은 가·피해학부모들끼리의 감정싸움으로 번졌고, 참다 못한 피해학부모는 교육청의 문을 두드리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학폭위(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개최됐다.

  이 사이 교육청과 학교는 아이들을 상대로 상담프로그램을 실시했으며, 아이는 잠시 안정을 되찾은 듯 했지만 이미 학부모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어진 상태로 치닫았다.

  여기까지가 간략히 정리한 학무모의 이야기다. 하지만 학교는 이와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학교는 학교폭력을 인지한 순간부터 학무모가 요구한 학교폭력의 사실조사에 성실히 임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피해학부모가 주장하는 따돌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체특정부위를 가격했다거나 다른 친구들과 힘을 합쳐 인격모독적인 행위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피해학부모 입장에서 오해할 수 있는 행위 자체는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0일 열린 학폭위는 위원회의 의결로 '학교폭력에 해당안됨'으로 결론 지어졌으며, 피해학부모는 불복의 의사를 내비쳤다.

  상해 사건도 있었다. B학교에 재학중인 한 학생(특수학급학생)이 또래의 급우들로부터 신체적으로 큰 피해를 당해 학교차원에서의 학폭위가 개최됐다. 학폭위를 통해 가해학생이 4명으로 추려졌으며, 상해가 있었음으로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사과와 합의보다는 서로간에 책임회피에 급급했고, 심지어는 특수학급학생이라는 이유로 피해학생의 잘못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논란이 됐다.

  학교측의 미흡한 대응으로 문제가 된 사건도 있었다. C학교의 경우 사건은 학생 간 교실 내 다툼에서 비롯됐다. 학교폭력 처리 경험이 없었던 담임교사는 학교폭력이 인지되면 즉시 관련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학생 부모에게 뒤늦게 알려 한바탕 곤혹을 치뤘다.

  학교폭력은 그 어떠한 폭력보다 질이 나쁘다고 감히 단언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우리네 행복중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옛 추억'이라 부르기도 하고, '경험'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나아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교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이 미친다. '학창시절', '동창회', '오래된 벗' 등 말만 들어도 설레이는 단어들이 '끔찍했던 학창시절', '죽기보다 참여하기 싫은 동창회', '악마같던 오랜된 벗'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가·피해자가 밝혀져 형사처벌 된 사건만 해도 최근들어 수십건인데 음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학교폭력의 희생자들은 적어도 배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학교들도 사안이 예민하고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 솜방망이 처벌이나 흐지부지 끝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해학생들에게는 안도의 한숨으로 다가올 일이 피해학생의 입장에서는 피해사실을 밝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으로 2차·3차피해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현재 우리시 청소년문제의 상담 및 교육은 'WEE센터'와 '1388청소년상담센터'에서 주로 하고 있지만 잠재적 재범가능성이 있는 가해자보다는 피동적 입장인 피해학생 위주로 진행, 이에 대한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학교와 교육청 및 경찰서는 우리시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전반적인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더불어 지속적인 폭력예방교육 및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상당기간 동안의 교화프로그램을 실시해 한순간 재미삼아 저질렀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될 수 있음을 각인시켜야 한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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