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거울이라 한다. 위대한 김제인을 찾아 그들의 사상과 업적 등을 재조명하여 잊혀져 가는 김제의 얼을 찾고자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김제의 정체성을 찾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옛자료들이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지만 본지의 편집방향에 따라 최대한 읽기 쉬운 한글로 바꿨고 부득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자 병용을 시도했음을 밝힌다. -편집자-

근세 실학의 대가 석정(石亭) 이 정직(李定稷)

　선생의 자는 형오(馨五), 호는 석정이다. 본관은 신평인데 고려조의 평장사(平章事) 문간공(文簡公) 이덕명을 시조로 하고 조선조 이조판서를 지낸 이상원의 후예이며 조선말엽의 무관을 지낸 이계환의 아들이다.

선생은 1841년(헌종7년) 6월3일에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요교부락)에서 출생하였고 1910년 10월2일에 출생지인 요교부락에서 사망하였으며 묘지는 김제시 용지면 용수리에 있다.

학업과 생애

　그는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4세에 천자문을 떼었고, 5세에는 당시의 주화인 엽전을 한눈에 보고 지면에 그대로 그려내므로 써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신동이었다.

선생의 아버지는 석정이 너무 일찍부터 머리를 쓰게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9세에 서숙에 입학시켰다. 선생은 그 해에 통감 15권을 완독했다. 선생이 10세 되던 해 아버지께서 친히 주시는 맹자 7권을 그대로 모두 읽고, 다음 해에는 논어를 완독하였다.

　선생의 아버지는 남달리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엄숙한 지도를 하였다. 아들이 오만한데로 흐를까 염려하여 언제나 인격적인 면에서 아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서 그는 아들 석정이 열두살이 되자 당시 역학에 뛰어난 태인의 강회민 문하에 보내어 역학에 대한 기초이론을 공부시킨 후 이듬해에는 금구의 안정봉에게 보내어 본격적으로 학문을 닦게 하였다. 선생은 여기에서 대학과 중용, 수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을 두루 익혔으며 실학사상에 눈 뜬것도 바로 이때인 것으로 전해진다.

　선생은 한편으로 시문공부에도 충실하면서 수학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는데 이때에는 가세가 기울어 끼니를 연명해야 할 처지였으나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칸트, 베이컨 등 서양철학을 연구

　선생의 이와 같은 노력으로 20대의 약관에 이미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문장력과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7세에 관직이 없는 야인으로서 중국에 가는 사신을 수행한 선생은 연경(지금의 북경)에 도착해서 동서양의 문물을 보고 새로운 식견을 얻어 동서사상을 절충하는 새로운 학문의 길이 전개되었다.

　선생은 연경에 머무는 1년동안에 당시 중국의 명사이었던 유상, 탁경염 등과 교류하면서 상호간 학문의 깊이를 알게 되었는데 좀처럼 칭찬을 해주지 않는 중국의 학자들도 선생의 심오한 학문적 깊이와 시문, 서화 등을 보고 감동하였으며 "조선국에 이만한 대문호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는 찬사를 보냈다.

선생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중국 시문학에 대한 고증과 평론 중국 성리학에 있어서의 정주학과 양명학에 대한 해석과 논평, 그리고 “칸트”,“베이컨”등 서양철학에 대한 연구와 동서철학의 절충론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연구하여 얻은 성과를 연석산방미정문(燕石山房未定文) 등 25권을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도학과 과학의 절충조화

　19세기 중엽, 선생이 학문을 할 때 우리 나라의 정세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인 면에서 볼 때 말할 수 없이 퇴폐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 침입한 외세는 침식의 야욕이 발동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서 국내의 정치계는 외세의 봉쇄를 주장하는 쇄국주의와 외세를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개화주의가 대립하게 되었다. 학계에서는 서학을 반대하는 보수파와 서학의 수용을 주장하는 신진파의 2대조류가 형성되었다.

한편, 김제에서 태어난 석정과 만경에서 태어난 해학 이기, 그리고 구례에서 태어난 매천 황현 등은 도학과 과학의 절충조화를 주장하면서 신진파의 문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을 일컬어 당대의 호남삼걸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처럼 선생의 학문은 어디까지나 실용을 위한 것이었다. 이론적 지식보다는 실용을 중시한 점은 호남 실학의 문류를 개척한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시문학에 있어서는 시경주해(詩經注解), 시학증해(詩學證解), 소여록(燒艅錄), 간오정선(刊誤精選), 소시주선(蘇詩註選) 등이며 성리학(性理學)에서는 연석산방미정문고(燕石山房未定文藁)가 있고 이밖에 어음학(語音學), 천력학(天曆學), 술수학(術數學) 등에 관한 책이 여러권이 있다. 이 가운데 시문의 일부를 간추려 석정집 3권이 현재 전하고 있다. 이 저서들은 당시 우리 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자료로서 조선조의 고전적인 학문 체계에서 근대적인 학문체계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중요한 자료들이다.

근세 김제화단의 맥을 형성

　석정 이정직 선생의 문체는 구양수, 시는 두보의 것을 즐겼고 서예는 왕희지 체를 기본으로 하되 구양순체의 해서와 동기창체의 행서, 안진경체의 비갈명을 즐겨 썼다. 가장 특징 있게 잘 쓰는 해서와 가는붓체는 다른 사람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묵화는 사군자를 중심으로 새, 초목, 괴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잘 그렸으며 특히 괴석은 그의 작품 중에서 매우 독특한 것이기도 하다.

시와 글, 서예와 그림의 대가인 석정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문하생들 중에는 유제 송기면, 벽하 조주승, 이당 조병헌, 석전 김연호, 소강 송헌호, 이운 나갑순, 설송 최규상, 오당 강동희, 유하 유영완 등과 같은 문장가와 명필가들이 배출되었다.

비록 석정 이정직 선생이 타계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선생의 학문적 영향력과 서·화법의 후광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호남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선생이 태어난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206번지(요교부락) 소재 초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고 현재 후손들에 의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또한 선생의 문집 15종30책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되었으며, 작품들은 선생의 고손인 서울여자대학교 이종석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김익현  desk@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