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선녀 수필갇상정보건진료소장

앞집에 상사화가 피었어요. 땅에서 꽃대만 쑤욱 올라와 꽃을 피워요. 잎은 흔적도 없고요. 그래서 상사화라는 이름을 가졌다지요.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으니까요. 이제 막 땅에서 머리를 내미는 것,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는 것, 높이 올라와 연분홍 꽃을 피운 것, 여남은 송이 돼요. 그 꽃에 이끌려 날마다 가봅니다.

 오늘은 앞집 할머니께서 아들네에 가셨나 봐요. 잠긴 대문만 흔들어보다가 그냥 돌아왔어요. 섭섭해서, 대신 인터넷에서 상사화 사진을 봅니다. 하지만 양에 차지 않아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젖지도 않고 살랑거리지도 않잖아요. 

  선운산에 갔었지요. 눈을 감으니 그들과 만났던 감격이 되살아나네요. 그곳의 상사화는 선명하게 붉었지요. 꽃무릇이라는 이름을 가졌어요. 갈래갈래 찢어진 꽃잎이 한숨처럼 서럽더이다. 그리움에 찢긴 가슴일까요.

  그 상사화를 잊지 못하여 해마다 꽃무릇이 피기를 기다리며 구월을 살아요.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미리 갔다가 허탕 치기도 하고요. 늦어버린 걸음이 안타까워 발을 구르기도 했어요.

  그날도 가랑비가 왔어요. 흐린 날의 산은 착 가라앉아 있었는데 나무 아래로 수묵 진 자리마다 붉은 물감을 거침없이 뿌렸더이다. 그 빨강은 깊은 산 속까지 튀어 선운산은 온통 상사화 사태였어요. 연두색 옷을 입은 날렵한 요정들이 불꽃을 들고 춤을 추고 있었던가요. 손에 붉은 부채를 높이 든 선녀들이 계곡을 따라 끝없이 돌아가고 있었던가요. 그들과 함께 휩쓸려 춤을 추었던가, 어지러웠어요. 오로지 그 절절한 상사화만 가슴으로 파고들어 산색도 건성으로 보였더이다. 

  그늘진 숲에 갇힌 여린 꽃대가 애처로웠어요. 어떤 것은 알뿌리가 땅위로 밀려 나와 버린 것을 봅니다. 저 속에 품은 꽃봉오리를 어찌할까요? 수도 없이 올라오는 꽃대를 밟을 세라  숲길로도, 계곡으로도 들어서지 못하고 그냥 하염없이 서 있었더이다. 

  줄기차게 쫓아오던 꽃무리는 장사송 근처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바위에 기대앉아 계곡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앞서갔던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면서 소리를 쳐요. 엄마, 저 위엔 볼 것도 없어요. 아들은 정상에 기대를 걸었던가 봐요. 제일 먼저 부지런히 달려갔었거든요.

  어디, 삶이 고지가 따로 있던가요? 정신없이 마구 달려가다 주위를 둘러보면 허망해지는 게 인생살이 아니던가요? 여정이 중요한 게지요. 지금 살고 있는 여기. 그날이 그날 같은 보잘것없는 일상이지만 가까운 이들을 눈맞춰주고 보듬어주고 그럴 일입니다. 먼 것, 만날 수 없는 것만 그리다가 삶을 허비하지 말고요.

 해마다 피고 저무는 저 꽃이 내 인생의 잔잔한 일상을 출렁이게 하듯 나 또한 누군가의 팍팍한 삶에 빨간 꽃이고 싶습니다. 간혹 꽃의 무게를 못 이겨 누워 있는 꽃을 봅니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고단하지 않으며, 때로 쓸쓸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요. 죽어도 만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상사화는 저리도 어여쁘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비가 그쳤는데 앞집 할머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네요. 햇살을 받은 상사화는 더 고울 텐데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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