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선녀 수필갇상정보건진료소장

 사실, 찬양단의 일원으로 이곳에 오면서 어느 자리보다 부담이 되었습니다.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 뭔가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교만인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근무하고 계신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재소자들이라고해서 남달리 악독한 것은 아니라고, 정말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한 순간의 격정을 참지 못하여 그만, 과오를 저지르게 된 것이라고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언뜻 형제님의 얼굴을 뵌듯했습니다. 아, 형제님!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마음을 달랬지만 안부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형제님을 알게 된 일이 생각납니다. 월간지에 실린 제 주소를 보고 형제님이 편지를 주셨지요. 그때 여러분에게서 편지를 받았었답니다. 거의 우체국 사서함의 주소였고 편지왕래를 원하는 내용이었지요. 부담이 되었지만 그 중에 한 분만이라도 편지친구가 되겠다고 맘먹었어요. 그래서 형제님을 정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갈한 글씨와 내용이 진실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수감생활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지요. 이곳저곳 후송이 잦았고, 또 독방에 계셨으니, 속으로 짐작 할 뿐이었지요. 중형을 받고 계시는구나. 

  형제님은 어머님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어요. 가슴에 못질을 했다고 못 견뎌 하셨지요. 바닷가에 사셨던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정갈하게 손질된 오징어가 생각납니다. 혼자 먹기 아까워 이집 저집 나눠 먹었지요. 

  그 때 동봉하셨던 조카 선예의 사진은 초등학생이었지요? 가수 박진영의 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더니, 지금은 텔레비전에서 어여쁘게 자란 모습을 보는군요. 원더걸스가 나올 때마다 저는 선예를 찾아서 흐뭇하게 바라본답니다. 형제님은 얼마나 좋으실까요.

  그리고 남편과 함께 멀리 부산까지 가서 형제님을 면회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형제님은 평온해 보이셨어요. 차분하게 말씀도 잘하시고 앞일에 대해서도 희망을 갖고 계셨지요. 그래서 한결 마음이 놓였답니다. 

  그 뒤 곧 출소하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받은 후 연락이 끊기더니 김제로 불쑥 찾아오셨잖아요. 서신교제를 시작한 지 10여년 만이었어요. 그 반가운 마음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었지요. 남편은 앞으로도 동기간처럼 잘 지내자고 했었는데요.

  형제님을 통해서 교도소생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자유를 구속당한 억류된 생활에 한없이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진보의 계기를 삼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형제님도 책을 무척 좋아하셨는데요. 아시겠지만 훌륭한 책들이 그 안에서 여럿 씌어졌지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에서 보낸 4년간의 체험은 그의 작품 <죽음의 집 기록>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합니다. 그 시절이 자신의 영혼을 구제를 위해서는 중요하면서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요. 

  가까이서 수박농사를 짓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분은 요즘 멋대로 웃자라는 순을 혼내주고 있답니다. 그런 순을 보면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집어 지그시 짓이겨준답니다. 그러면 성장을 늦추고 열매를 맺는다고 해요. 쓸데없는 곁순을 질러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잘라내 버리지 않고 상처를 줘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도와준다니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내려다보시고 꼭 필요한 때에 손을 대주시는 이치와 같다고 느껴졌어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받는 고통. 하지만 누가 감히 고난당하는 것을 원할까요. 다만 지나간 후에야 유익이었음을 깨닫는 게지요. 극복한 후에야 생에 대하여 더 진지하게 성찰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가 안 좋아서 씹는 것을 힘들어 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으신지. 감내해온 그 곤고한 세월이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가슴을 갖게 해서, 이웃의 아픈 상처를 품어주시며 알찬 나날을 보내시리라 믿어요. 사람이 오직 자신 혹은 가족만을 위해서만 눈물을 흘린다면 그는 불우한 사람이니까요. 

 어느 곳에 있든지 영육 간에 강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안에 있는 형제들, 또 못난 저도 옛사람은 죽고 매일 매일 새롭게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 일일초처럼.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