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냐고? 잠깐 그런 적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만족해. 이게다 하늘의 뜻이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여. 나한테는 하늘이 내려준 천사들인데 뭐…"

  검산동에서 거주중인 정봉순(67) 할머니는 혼자서 다섯 명의 식구들을 책임지고 있다. '고희(古稀)'가 가까워진 노인의 몸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가장의 역할을 떠안고 있는 상태다. 

  "한때는 남몰래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은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놓고 편하게 돌아다니는데 아직도 누군가를 돌봐야 되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근데 그것도 잠깐이야. 예쁜 천사들의 얼굴을 보고있으면 그런 감정들이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져 버리거든. 되려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게 미안하지"

  할머니는 정은혜(18)-은지(15)-은채(11)-은우(9) 네명의 손녀는 물론 정신지체를 앓고있는 환갑이 넘은 여동생까지 맡고 있다. 어린 손녀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여동생까지 돌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겠어. 동생 같은 경우 다른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준다고도 했지만 이 녀석이 끝내 나하고만 살겠다고 달라 붙는 거야. 허허… 그냥 나하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봐.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는 다함께 아끼고 살아야지 뭐"

  정부에서 보조를 받는 것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형편인지라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우 크다. 십원 짜리 하나 함부로 쓰지 않을 정도로 아끼고 또 아끼지만 손녀들에게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해주기가 쉽지 않다. 행여나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답게 할머니는 지혜롭게 이같은 상황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시골에서 비가 새는 집에 살던 시절에는 직접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편지를 써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현재의 조그만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단순히 밥만 먹이는게 키우는 것은 아니지. 다들 감수성이 예민할 때고 성격도 다른지라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으면 안돼"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이지만 손녀들을 반듯하게 키우고 싶어한다. 때문에 되도록 많은 얘기를 아이들과 나누고 가슴속에 상처를 안지 않고 밝은 마음으로 성장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언젠가 손녀중에 한명이 스팸전화로 인해서 전화비가 엄청나게 나온 적이 있어. 전화국에 가서 문의해보니까 전화비를 깎아줄 수 없대. 어린 아이가 실수로 저지른 행동인데… 다른 곳으로 알아보니까 보호자 동의 없이 행한 스팸전화 등은 할인이 가능하다는거야. 일단은 그렇게 해결했지"

  당시 스팸전화를 이용했던 손녀는 엄청난 전화비에 깜짝 놀라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는 손녀를 혼내기보다는 "아직은 네가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 같은 잘못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다 경험으로 삼자꾸나"하며 기죽은 손녀의 마음을 다독거려줬다. 

  다행히 어려운 환경에서도 손녀들은 하나같이 공부도 잘하고 반듯하게 자라고 있다. 할머니 역시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삐뚤어진다는 편견을 지우기 위해 때론 엄하게 때론 눈높이를 맞춘 대화로 바른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어려운 일이야 매일 터지지. 남들만큼 못 먹이고 못 입혀서 미안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바로바로 해결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제발 남들한테 손가락질 안 받고 사람구실 똑바로 할 수 있게 잘 커줬으면 좋겠어"

  오늘도 할머니는 '긍정의 힘'을 가슴속에 새기고 다섯 천사와 함께 더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 은지네 가족사진

김종수 시민/객원기자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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