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한 '금산교회'의 실제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엮은 '팟정이의 봄'이 (사)모악문예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첫번째 이야기로 금산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으로 알려진 이자익목사와 조덕삼장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자익은 조덕삼의 종이었으나, 조덕삼이 이자익을 후원해 목사가 되는 것을 도왔고, 그 후에 목사로 섬겼다는 이야기를 모태로 재미있게 '팟정이의 봄'을 구성했다. 7차례에 걸쳐 '팟정이의 봄'을 연재한다.

남쪽은 남자석  동쪽은 여자석

  뎅 뎅 뎅 뎅.....
  일요일 아침 9시가 되자 언덕 위의 예배당에서 종탑이 울린다.
  자석은 5시에 일어나 마당을 쓸어놓고, 아침을 먹기 전에 산에 올라 나무를 한짐 해 왔다. 그리고 정갈히 몸을 씻고 머리를 빗어 올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석의 모습은 머슴의 모습이 아니다. 눈은 초롱초롱하고, 콧날에서는 광채가 나는 것이 어느 대감댁 자제보다 귀티가 난다.

  태생이 미천하여 머슴 짓을 하고 있지 명석한 머리는 인근 소학교나 서당의 학생보다 뛰어났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지게가득 한숨을 지고 다니는 자석에게 설렘을 주는 것은 주인집 딸인 소연을 보는 것이다. 그 예쁜 소연의 모습을 눈치 보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곳이 예배당이다.

  이곳 팟정이마을에 예배당이 들어서고 예배가 끝난 후 나눠주는 옥수수 빵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기를 쓰고 다니면서 예배당을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자석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경멸했었다. "거지새끼들, 옥수수빵 하나 먹겠다고 아우성이라니..." 차라리 굶고 말지 시꺼먼 손을 내밀며 한쪽이라도 더 받겠다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우습다며 비웃음을 짓곤 했다.

  목사님의 잦은 방문이 있더니 조대감네 가족이 예배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조대감 가족이 일요일이면 고운 옷을 차려입고 예배당을 가는 모습을 지켜본 자석은 예배당이라는 곳에 호기심이 생겼고 무엇보다 고운 소연이 예배당을 간다는 것이 자석의 마음을 끌었다.

  주인인 조대감 어른의 강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어미 아비의 강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자석은 일요일이면 예배당을 가기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할 일을 하였다. 자석 스스로 무언가에 홀리듯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자석아, 밥 묵었냐?" 자석은 어미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며 거울에서 눈을 땠다.
  "야, 한술 떴스라."
  "나무 한 짐 해놓고 뒷마당 정리도 혀야지."
  "다 했어라. 시방 예배당 댕겨 올라고 혀는디요."
  자석 어멈은 방문을 열고 자석의 모습을 훑어본다. "아이고, 내 새끼 잘 생겼네. 이 잘난 놈을 누가 났다냐." 자석 어멈은 말끔히 차려입은 아들의 모습에 입이 벙그레해져 자석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엄니도 참. 엄니나 잘생겼다고 하지 머슴 놈을 누가 쳐다나 보간디요." 어머니의 칭찬에 내심 좋으면서도 자석은 자신의 신분을 상기 시키며 어머니의 심기를 건들었다.

  "그려, 머슴 놈은 머슴 놈으로 살어야 속이 편허지. 헛것에 물들지 말고 팔자대로 살어야혀."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야 양반 상놈 다를 것이냐 만은 자석 어멈은 아들이 학교 다니는 또래 친구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아들 하나 있는 것 남들처럼 잘 먹이고 잘 키우고 싶지만은 남의 집 머슴 처지에 제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살 수 없는 현실은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다녀오것요." 자석은 어미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지만 걱정마시라는 대답만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을 인정하면 목구멍에서 밀려오는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종탑에서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부지런히 예배당에 들어서니 마을사람 여럿이 두런두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자석이 왔구나." 예배당 앞에 서 있던 주인댁 조대감이 아는 척을 해왔다.

  "예, 헐 일은 다 혀놓고 왔구만유." 자석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 마냥 조대감의 눈치를 살피며 놀러 온 것이 아니라는 자기변명부터 하였다.

  "주일날은 쉬어도 된다는데 뭔 일을 하였다냐. 하나님도 엿새 일하고 칠 일째 되는 날은 쉬셨다고 안허디. 너도 쉬어야지."

  "감사헙니다. 그리 알겄고만요." 자석은 진작부터 주인어른이 일요일은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쉴 수가 없었다. 방에서 뒹굴거리다 집사 영감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맘이 편치 않고 좌불안석 눈치가 보였다.

  '주인 어르신이 쉬라는디 집사 영감도 어찌 못헐 것인게.' 자석은 주인 대감의 말에 힘을 얻어 쉬리라 다짐을 하였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두 개이다. 남쪽과 동쪽으로 난 문에는 남자석 여자석이라는 글씨로 판자판이 놓여있다.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문이 다른 것이다.

  남자 석이라고 쓰여 있는 남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앞쪽으로 목사님이 앉는 강단이 있다. 그리고 동쪽 방향으로 여자석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유별한데 남자와 여자가 같이 앉는 것은 상놈이나 하는 짓이라는 유지들의 말에 따라 목사님이 칸을 나눈 것이다.

  자석은 맨 앞으로 걸어가 끝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는 자석의 지정석처럼 되어버려 어느 날 부터는 아무도 그곳에 앉지 않았다.

  자석이 이 자리를 앉게 된 건 우연이었다. 처음 예배당에 들어와 쑥스럽고 껄끄러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제일 뒤쪽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석에게 목사님이 앞쪽으로 나오도록 했던 것이다. 어린 아이인 자석이 어른들 속에 묻혀있어 더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석의 자리에서 목사님 쪽을 보면 옆으로 여자석 앞자리가 보이는데, 주인댁 소연이가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주인댁 아씨라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지만 소연의 모습은 멀리서 바라만 봐도 좋았다.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깔깔깔 웃기라도 하면 자석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떨려왔다. 그런 소연을 볼 수 있는 이 자리는 자석에게는 천국이었다. 하나님이 자석에게 준 복이라 생각하였다.

  무심결에 소연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석은 귀까지 빨개지며 고개를 숙이고 손만 만지작 거렸다. 이런 자석이 재미있는지 소연은 자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웃곤 하였다. 

  자석은 목사님이 좋았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가난한 머슴 집 아들인 자기도 하나님이 사랑할까하는 의심이 들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목사님이 조대감에게 말할 때나 머슴인 자석에게 말할 때나 같은 표정으로 웃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석에게 예배당에 나오고 싶은 보람과 즐거움을 주신 분이지 않은가.

예배가 끝나면 소연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인 조대감을 예배당 안마당에서 기다렸다.

  자석은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마냥 예배당 뒷마당도 돌아보고 예배당 정리도 하면서 마당 앞을 어정거렸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행동이지만 행여 누구에게 들킬세라 조심조심 곁눈질을 하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가는 소연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면 그제야 자석은 그 뒤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