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꽃을 아세요?
  꽃이 피기 전, 어린 이삭의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이 생각납니다. 껍질을 벗기면 새하얗고 몽실한 녀석이 들어있었지요. 그래서 삐비꽃을 보면 아까운 생각이 먼저 듭니다. 줄기 속에 돌돌 말아져 있을 때, 뽑아서 먹었어야 했는데 놓쳐버렸으니.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면서 양손 그득히 뽑아 들고서도, 쉽게 먹지 못하고 쥐고만 다녔었지요. 그래서 꽃말이 아쉬움인가 봐요.

  삐비꽃에는 어린 시절이 들어있습니다.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계집아이를 다시 만납니다. 입에 넣어보면 그때 그 맛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말랑말랑해져요. 인생은 앞으로 나아갈 뿐이지요. 가슴에 추억으로 남긴 채, 결국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요.

  그래서, 갑자기 누군가 그리울 때면 눈을 감습니다. 저 산 너머 아스라이 멀어진 고향이 생각나면 눈을 감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도 눈앞에 다가선 듯 선명하게 보입니다. 때론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도 눈을 감습니다. 진실은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시골길을 가다가 하얗게 핀 삐비꽃을 만났습니다. 언덕바지에 무리지어 핀 모습이 서럽더이다. 꽃이 피었는데 왜 그렇지요? 무덤가에 피어서 그럴까요.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모습은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쓰다듬어 주는 듯도 합니다. 생명은 저렇게 돌아가는 것인데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는 줄 알고 가슴 졸인 적이 있습니다. 많이 편찮으셔서 집으로 모셔왔는데, 갑자기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며 몸부림을 치시는 것입니다. 저혈당에 빠진 것이지요. 부랴부랴 설탕물을 먹여 보았지만 너무 위급해서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습니다. 다행히 회복되셨지요. 무척 놀랬습니다, 많이 쇠약해지신 상태셨거든요.

  밤에 화장실 가다가 넘어지신 엄마는 고관절이 골절되어, 2월에 수술하셨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걷기 시작하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앉지도 못하시는 거예요. 거기다 엉덩이 부분에 욕창까지 두 군데 생겨버렸고요. 입원치료가 끝나자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되나요,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계시는데, 자리에서 영 일어나지 못하게 되기 쉽지요. 그래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 집으로 모셔오기로요. 상황이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지요. 욕창을 치료하고, 재활운동을 도와서 꼭 걸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회복이 너무 더뎠지요. 입맛을 잡지 못하고 겨우 죽만 억지로 몇 수저 뜨시고 마는 거예요. 이것저것 음식을 챙겨드려 봐도 얼굴을 찌푸리시고 고개만 저으십니다. 늘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프다, 맛없다, 짜증만 내셨습니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요.

  그런데 의식이 흐려졌던 날, 딱 한 번, 엄마는 내 딸이지만 참 예쁘다고 중얼거리셨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지요. 아, 엄마! 왜 그러셨어요. 예전에 건강하셨을 때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고,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그러셔야죠. 늘 기쁨과 감사를 누리면서 살아오셨잖아요. 몸이 아프니 만사가 다 귀찮으신 게지요.

  이제 엄마는 욕창도 나았고 보행기를 밀고 화장실에도 가십니다. 그러자 빨리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밤중에 화장실에 가셨다가 또 넘어지셨습니다. 잠결에 몸이 말을 안들은 것이지요.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아직 마음 놓기는 이릅니다. 운동을 안 하면 뇌도 몸을 포기하게 되거든요.

  엄마, 조금만 참으세요. 자주 웃게 해드릴게요.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엄마가 전에 가르쳐 주셨잖아요.

소선녀  수필가/상정보건진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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