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의 일이다. 대만이 핵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하기로 하여 한국 정부와 환경단체는 물론 유엔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북한의 폐광에 핵폐기물을 묻게 되면 한반도 전역에 흐르는 지하수와 지질 연관성으로 인해 남북한 모두가 수백만년 동안 핵의 볼모가 될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고건 국무총리는 그린피스 선박을 동원해 반대운동을 하자고 할 정도였다.

당시 필자는 환경단체와 국회 대표들과 대만을 방문하여 정치권과 행정부를 상대로 핵폐기물 북한수출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그때 대만의 6기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란위섬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란위섬은 ‘난이 있는 작은 섬’이란 뜻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란위섬은 태평양에 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런데 이 섬에 아름다운 난 대신 방사능 오염이라는 죽음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핵폐기물이 들어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을 곳곳에는 ‘서사반핵’(誓死反核: 목숨을 걸고 핵을 반대한다)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마을 주민 진무남(55)씨는 “옛날에는 큰 질병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기도 갈수록 줄고, 암·백혈병·피부암·어린애들의 정신장애가 계속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친동생과 아내의 오빠도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두 사람 모두 건강이라면 자신 있던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핵폐기물 탓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구 3천명도 채 되지 않는 섬에서 50명이 넘는 기형아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1학년 10명 중 2명꼴로 저능아가 출현해 5개의 초등학교에서 저능아반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대만의 핵폐기물이 북한에 반입되면 한반도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된다며 이를 저지한 대한민국 정부. 지금 그 정부가 앞장서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국립공원 앞의 섬 위도에 핵폐기물을 묻으려고 한다. 위도에서 핵폐기장 유치에 앞장선 한 인사의 고교생 딸은 돈 몇 푼에 고향을 팔아먹으려는 어른들을 질타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군민의 뜻을 따르겠다던 부안군수는 하룻밤 사이에 태도를 180도 바꾸어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해버렸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자치단체를 돈으로 사겠다는 발상을 버리지 못하는 정부 당국, 개인의 정치적 영달을 위해 주민의 안전과 의사를 무시하는 자치단체장, 지구상 어느 나라도 안전한 핵폐기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언론, 이 모두가 서해의 아름다운 섬 위도를 한국판 란위섬으로 내몰고 있다.

천혜의 새만금 갯벌을 매립하는 전북도와 부안군이 핵폐기장까지 유치하겠다고 한다. 채석강과 변산반도국립공원, 아름다운 내소사, 그리고 환상적인 서해낙조로 유명한 부안은 갯벌이 사라지고, 핵폐기물이 묻혀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전락할 운명에 처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지역발전을 위하는 길인지 부안 군민들과 전북 도민들은 냉정히 생각해보길 간곡히 권유한다.

왜 선진 유럽국가들은 핵발전을 포기했는지, 돈도 많고 에너지원도 풍부한 그들이 왜 육지와 바닷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풍력발전을 국가의 미래자원으로 판단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는지, 기성세대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인 청소년들과 함께 이 의문을 푸는 토론과정을 갖자.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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