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팍팍 줘서 남는게 있겠어요?"

요촌동 무지개 팥죽집을 찾는 단골들이 종종 물어보는 말이다.
"당연히 남지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설마 손해보면서 하겠어요"

매상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엄살을 떠는 것이 일반적인 장사꾼들의 속내라는데 의외로 주인 박옥진(47)씨는 서슴없이 솔직한 답변을 뱉어낸다.

"이 사람은 10년 동안 이렇게 장사를 해왔어요. 괜스레 그때그때 이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싸게 많이 팔아서 전체적으로 이윤을 보자는 것이지라"

다정하게 옆에 앉아있던 주방아주머니 이영신(55)씨가 손뼉을 마주치며 즉시 맞장구를 쳐준다.

배고파서 한 그릇, 맛있어서 두 그릇, 그리고 거절 못해 세 그릇.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종종 거쳐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싼 가격에 요기 삼아 먹다가 입에서 살살녹는 맛에 한 그릇을 더 먹고, 여기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고맙게 여긴 박옥자씨가 커다란 국자로 두어번 정도 퍼주면 영락없이 세 그릇이 채워진다.

다소 벅찬 양인 세 그릇에 후한 인심이 합쳐지면 손님들은 꼼짝없이 과식의 덫에 걸려 들게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먹고살자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조그만 팥죽집, 오랜 시간 동안 시장터의 한곳을 지켜온 그곳의 두 여인과 함께 입맛당기는 수다 속으로 같이 참여해보자.
-편집자주-

원래부터 팥죽에 관심이 많았는지?

박옥진씨: 솔직히 말해서 전 따로 팥죽을 배워본 적도 없고 그런 음식자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처음에는 뭔가 식당을 하려고 했었던 것뿐이고 마침 기존에 있던 팥죽집이 문을 닫아 옳거니하고 일단시작하고 본 거죠"

이영신씨: 아따! 동생 그렇게 말을 하면 어쩐다냐? 남들처럼 어릴 때 고향에서 끓여주던 그 팥죽의 향기에 취해서 평생을 바치기로 했다는 식의 거창한 말은 못해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딴사람들이 오해한당게"

박옥진씨: 성님도 참…(웃음)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잖아요. 제가 팥죽에 애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10년이 넘어가도록 이것을 고수하겠어요. 명절이나 정말 불가피한 경우 아니면 일년 열두 달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는게 우리 아닙니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거에요"

이영신씨: 맞어, 맞어. 과거에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정을 붙였다는 것도 중요하지. 항시 옆에서 지켜본 바로도 자네는 이젠 팥죽 없이는 못 살 사람 같어"

손님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박옥진씨: 글쎄요(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저희 집이 손님이 많은 편인가요? 다른 식당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손님이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영신씨: 다른 것은 솔직하더만 이것은 쫌 아닌 것 같구만. 식사시간대마다 눈코 뜰 새 없이 시달리면서 그런 말이 술술 잘도 나오능가?

박옥진씨: ……

이영신씨: 동생도 알다시피 난 식당업에 종사한지 30년이 넘었어. 그 동안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세월만 해도 엄청나다는 말이제. 근데 우리지역에서 이 정도 아담한 규모에 이 정도손님이면 정말 괜찮은 편이야. 이 계통의 대선배로서 내가 보장하지.

박옥진씨: (말없이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영신씨: 동생이 말은 이래도 음식을 만들 때는 굉장히 진지하답니다. 이제는 편하게 갈 때도 되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생은 고집스럽게 옛날방식을 고수하지요. 팥 속에 인공의 무엇인가를 첨가해서 삶으면 색깔이 예쁘게 나오고 미리 만들어진 팥을 근수로 사다가 쓰면 무척 편한데도 동생은 억척스럽게도 직접 발품을 팔아 제일 품질 좋은 팥을 쓰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원래부터 음식에는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지?

박옥진씨: 음식 역시 특별히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근데 이따금씩 음식을 만들어내면 주위 어른들께서 제법 솜씨 있다는 칭찬은 해주시는 편이었지요. 그래서 나름대로의 아니 혼자만의(웃음) 자신감은 가지고 있었죠. 음식에 관해서는.

이영신씨: 동생은 내가봐도 음식솜씨 하나는 타고났어. 눈썰미가 좋아서 대충 보고도 금방금방 따라서 배우는 것 같더라고. 근데 나는 일만 오래했지, 영 음식에는 잼뱅이야.

박옥진씨: 성님도 참…방금 전에 나보고 솔직하지 못하다고 하구선 성님이 엄살떠시네요. 아니 그래, 음식 솜씨 없는 사람이 조리사자격증을 따서 한식집하고 갈비집에서 주방장까지 했습니까?

이영신씨: 그, 그거야…(잠시 당황한 표정), 아니 그리고! 탁 터놓고 얘기해서 나만 조리사자격증 있나? 동생도 있잖아?

박옥진씨: 그냥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인정하게요. 진짜로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팥죽을 대접하고있는 입장에서 음식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고 하면 경우가 아니잖아요.

이영신씨: 그것도 그러네. 자신감도 없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 집에 손님들이 드나든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큰 실례를 범하는 꼴이 되는 것이구만.

가장 흐뭇한 순간은?

박옥진씨: 뭐, 별 것 있겠어요. 그냥 내가 성의껏 만든 팥죽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죠.

이영신씨: 아이구, 그렇게 싱겁게 말하면 질문한 기자님이 맹숭맹숭해지잖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야지.

박옥진씨: 아따 성님, 성질도 되게 급하시네. 그렇잖아도 그렇게 할려고 했구만.

이영신씨: 그, 그랬어…?

박옥진씨: (장난스럽게 이영신씨를 흘겨보더니) 우리지역을 떠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나 연휴에는 꼬박꼬박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상당히 되요. 그것도 가족들을 대동하고 나들이 식으로 이곳을 들리시지요. 덕분에 쉬는 날에도 문을 못 닫고 꼼짝없이 일을 해야지만 그 뿌듯함과 고마움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어쩌면 제가 이일을 계속할 수 있는 최고의 원동력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영신씨: 점점 옛날 시장의 모습이 무너져가고 있는 요즘, 정말 이런 곳이라도 없으면 주부나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갈 데가 없답니다. 특히 장날이라고 시골에서 어렵게 나오신 분들이 버스시간에 늦을까봐 연신 시계를 힐끔거리시며 허겁지겁 팥죽을 드실 때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뭉클한 감정이 든답니다. 아 내가 여기서 일하기를 잘했구나하는 생각은 물론이구요.

박옥진씨: (감정이 복받친 듯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영신씨: 동생, 아니 박 사장.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자고. 내가 온힘을 다해 도와줄께.

박옥진씨: 예, 성님. 고마워요.

팥죽집 두 아주머니의 따뜻한 대화에 참여하는 내내 기자는 두 분이 퍼주시는 팥죽을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
동짓날 할머니께서 해주신 것 같은 입안 가득 배어나는 담백, 달콤한 맛에 배가 차는 것도 모르고 계속 수저질을 했고 그런 기자의 그릇이 빌 새라 두 분은 연신 팥죽을 담아주셨다.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과식(?)에 연신 한쪽 손으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배가 꺼지면 다시 들려서 한 그릇 더 먹어야겠다고.

김종수  oetet@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