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꼼꼼하게 무엇인가를 기록할 필요도 글씨 못쓴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자판과 마우스만 작동시키면 컴퓨터가 척척 알아서 해준다.
덕분에 일상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해졌지만 그럴수록 잃어 가는 것들도 많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
편지나 일기 등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책상에 잔뜩 움츠린 채 누가 볼세라 깨알같은 글씨로 그날 하루의 일상을 정리하던 일기문화는 점점 과거 속으로 묻혀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기는 먼 훗날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날그날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점점 개인화 되는 사회에서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게 해주는 일기 만한 스승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잊혀지고있지만 더욱더 절실히 필요한 그것, 일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결국은 자율적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일기
먼저 일기는 자발적으로 써야한다는 명제를 달고 있다.
일기는 지극히 자신에 대해 또는 자신의 관점에서 쓰는 것이기에 여기에 간섭이 섞이면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어렵다.
백석초등학교 안석환(53) 교사에 따르면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기를 쓰고 즐기던 아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억지로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아무리 일기의 장점에 대해 설명해도 인터넷에 빠져버린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지만 아무리 과제 적인 성격이 강해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은 될 수 있으므로 우선은 아무리 짧아도 꾸준히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초등학교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강제적으로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중·고등학교로 넘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장 입시라는 커다란 산이 자리잡고있는 터인지라 학생들 스스로 하기 전에는 간섭이 쉽지 않다.
김제여고에서는 얼마 전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기를 얼마나, 며칠간격으로 쓰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1학년과 2학년에 재학중인 145명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조사해본 결과 매일 일기를 쓰는 학생은 불과 8명에 불과했고 2∼3일 간격 혹은 일주일에 한번이 58명, 보름이나 한달에 한번은 13명으로 나왔다.
모두 합쳐도 채 절반이 되지 않는 숫자이다.
조사를 담당했던 윤치헌(45) 교사에 따르면 "아무래도 자율성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지라 타 학교 역시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며 "강제적으로 시킬 수는 없어도 일기의 효과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은 꾸준히 동반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 세가지
하나 마음은 바르게 생각은 넓게
말 그대로다. 하루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자기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많은 반성과 더불어 결심을 하게 된다.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언정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다하겠다.
둘 관찰하는 힘을 길러준다
아무리 사소한 내용일지라도 그날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더듬어본다는 것은 분명 관찰력 향상에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날의 날씨를 살피고 가장 인상깊었던 일을 체크해본다.
매일매일 반복되다보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관찰능력이 쑥쑥 자라날 것이다.
셋 요즘 뜨고 있는 말 중에 '글짱'이라는 말이 있다.
개성이 중요한 사회코드로 떠오르면서 얼마만큼 자신을 멋있고 확실하게 표현하냐는 것은 또 다른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글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느는 것이 아닌지라 매일같이 쓰는 일기는 문장력 향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일기 쓰는 할아버지·할머니의 메시지
'신세대할머니' 송순례(64·봉남면 대송리)씨
비록 손자손녀는 두고 있지만 송순례씨는 아직도 할머니라는 소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할머니라는 호칭이 붙은 사람은 집에서 가만히 쉬어야되고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은 못할 것이라는 그릇된 편견이 싫어서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송순례씨는 웬만한 젊은 사람들 이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시간제로 화장품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성회관에서 세가지과목을 한꺼번에 수강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인지라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하다.
거기에 손녀와 어울리기 위해 3년 전에 배운 인터넷은 그녀 삶의 큰 윤활유역할을 해주고 있다.
"메일 확인도 꼬박꼬박하고 궁금한게 있으면 정보검색도 자주 해요. 휴대폰도 통화보다는 문자를 즐기는 편이고 재미있는 이모티콘도 종종 이용하고 있어요"
본인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우와! 할머니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하고 물을 때는 되려 황당하다는 송순례씨다.
거기에 웬만한 아마추어작가 뺨치는 유연한 문장력은 그녀의 한계가 어디인지 의심하게 할 정도다.
도저히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으로는 안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송순례씨는 자신 있게 말한다.
"전 집안이 가난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어요. 겨우 힘들게 고등학교만 졸업했죠. 하지만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있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날이때까지 일기를 썼다는 것이에요. 일기를 씀으로서 나태해진 내 자신을 계속적으로 채찍질 할 수 있었고 생각하는 것도 좀더 젊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문장공부야 따로 할 필요 없었고요"
장세동 할아버지의 40년 '목수일기'
"어휴…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사람이야. 말이 일기지 혼자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것뿐이라고"
기자의 취재요청에 장세동(73·신풍동)씨는 완강하게 거부하며 연신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이유는 단하나.
평범한 목수인 자신은 절대로 남들 앞에 나설 정도로 잘난 인물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주변의 평판은 그의 말과는 너무나 달랐고 어린 학생들을 위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서야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목수반장을 해왔음에도 장세동씨는 그다지 돈을 모으지 못했다.
씀씀이가 헤프거나 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는 항상 마음속에 정직이라는 두 글자를 품고 산다.
때문에 남의 집을 짓거나 공사를 맡아도 필요이상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고 혹 돈이 남더라도 인건비를 뺀 금액은 고스란히 원주인에게 되돌려준다.
남들은 어리석다는 말도 종종 하지만 장세동씨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런 그이지만 딱하나 약속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기 그지없다.
한두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상습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증거물을 들이대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40년을 넘게 써온 '목수일기'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물론 다른 이에게 줄 밀린 임금 및 외상 등 낡은 일기장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의 발자취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하루를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살고싶다는 그에게 일기장은 말없는 스승인 셈이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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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원들에게 현금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