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뜻의 '등하불명(燈下不明)'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어렵사리 적응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것을 자주 망각할 때가 있다.

유명한 일화, 흥미진진한 사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여러가지들.

적어도 좀처럼 알기 어려웠던 사항들이 다가오게 되면 일단 눈이 커지고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는 우리는 너무 이런 것들을 멀리서만 그리고 밖에서만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지역의 정통무예는? 전국 유일의 성리학의 계승지는? 한일합방이 되기 직전 망국의 기운을 비탄해하며 스스로 굶어죽는 길을 택한 충신이자 개혁운동가인 호남3걸의 한사람은?

모두가 우리지역과 관련된 질문들이거늘 여기에 자신 있게 답할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른 지역에서 더 잘 알지도 모르는 일이다.
학문과 무예, 그리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까지…

잘 찾아보면 우리지역 역시 전국 어느 곳 못지 않게 자랑할만한 것이 많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몰라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금새 눈에 들어올 만한 것들.

이에 본지에서는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우리지역의 당당한 자랑거리중 하나인 정통무예 '태격'을 학문 그리고 지나간 위인들과 함께 2회에 걸쳐 집중조명 해보기로 한다.

문무합일(文武合一)의 기상을 이어받아

전국에서 유일하게 성리학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곳, 성덕면 학성강당.

우리지역의 정통무예 '태격'은 이곳을 통해 전수되고 있다.

'태격'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으나 택견이라고 바꿔서 말하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으리라.

수박(手拍)·수박(手搏)·탁견(托肩)·각술(脚術)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다가 택견이라는 하나의 공용된 명칭으로 불려지게된 택견.

우리민족무술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표현되는 택견은 일반적으로는 하나로 통일된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기실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말하자면 '태격'은 우리지역식 택견인 셈이다.

폭넓게 대중화가 되지 않았다 뿐이지 '태격'은 어떤 택견유파에도 뒤지지 않는 역사와 다양한 기교를 가지고 있다.

앉아서 하는 좌식과 서서하는 입식,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며 이후에 수없이 많은 변화를 가지고있는 현란한 변초(變招)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학성강당 김종회(41) 훈장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태격'에 대한 오해를 우려해서인지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 역시 많은 사람들이 태격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전에 앞서 태격은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습니다. 태격을 배울 때는 사서삼경을 비롯한 많은 글공부가 우선적으로 뒷받침되어야합니다. 태격에 호기심이 있어서 단순히 찾아온 것이라면 그냥 "다시 돌아가주십사"하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말처럼 '태격'은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배우기가 힘들다.
기본적으로 사서삼경 등에 달통 해야하고 앉아서하는 좌식의 오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서서하는 입식에 입문할 수 있다.

기본적인 문인의 소양을 먼저 갖추고 나서 무예의 기교를 익히라는 배려에서이다.

충분히 남을 상하게 할 수 있음에도 철저히 방어의 형태를 고수하고있는 '태격'은 무술로서 연구되었다기보다는 문인 또는 무인들의 몸 단련을 위한 수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태격'의 흔적을 찾아서

우리지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중 하나임에도 재조명적인 부분에서 취약점을 드러내고있는 '태격'은 굉장히 많은 부분이 묻혀있고 가려져 있는 상태이다.

현존하는 사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명종 때의 무신 두경승(杜景升)에 관한 이야기이다.

만경 두씨(萬頃杜氏)의 시조이기도한 그는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 의 난을 진압하는 등 패기있고 능력 있는 무인의 모습을 보여 후에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까지 이르렀던 인물이다.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그는 1197년 중서령(中書令)을 겸직하던 중, 정권을 잡은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자연도에 유배되어 울분으로 피를 토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탁월한 무예인이기도했던 두경승은 어린 시절부터 익혔던 택견의 달인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가 우리지역 출신인 것으로 봐서 그가 구사했던 무술은 '태격'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되고 있다.

지평선중학교(구 성동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일명 '서송골'로 불리우고 있다.

글서자에 욀송자를 써서 글을 읽는 골짜기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학교의 교가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오래되었고 유서가 깊다.

이곳에서 약간만 위로 올라가면 각시판이라는 언덕이 있다.
본래는 각저판이었으나 마을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돌다보니 각시판이 되고 말았다는데 이곳은 본래 '서송골'에서 글을 읽던 유생들이 무예를 겨루던 곳이라고 한다.

'한서주(漢書注)'라는 문헌에 따르면 '두 사람이 서로 맞서서 힘을 겨루고 기예와 활쏘기·말달리기를 겨루므로 이름을 각저라 한다'라고 나와있고 '문선서경부주(文選西京賦注)'에서는 '둘씩 서로 맞서서 씨름·기예·활쏘기·말달리기를 하므로 이름을 각저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모두 달려들어 힘을 겨룬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곳 각저판을 무대 삼아 우리지역은 물론 고창, 부안 등 인근지역의 유생이나 선비들까지 '태격'이나 '씨름'등을 겨루었다고 한다.

이렇듯 어느 곳보다도 문무가 충만했었던 서송골이었으나 이후 이를 시기한 일본인들에 의해 일제시대 강제로 공동묘지화가 되었고 이후 이를 비통하게 여긴 김기복이라는 인물이 해방 후 남포지역의 염전건물을 뜯어다 다시 그 자리에 성동초등학교를 세우게 된 것이다.


※ 다음호에서는 학문과 태격을 병행하여 수련하는 학성강당 유생들의 현재모습과 재조명되어야할 잊혀진 독립운동가 이기선생, 그리고 '태격'을 배우기 위해 우리지역을 찾은 정자태극권(鄭子太極拳) 고수와의 만남 등이 이어집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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