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게 뭐야? 부대찌개잖아?"
"그러게, 우와! 라면사리도 들어가 있네"
옹기종기 둘러앉은 저녁식탁에 등장한 부대찌개 하나에 학성강당 유생들의 얼굴이 보름달 마냥 환해졌다.
특히 20대 중반까지의 젊은 유생들은 무슨 특별한 음식이라도 접한 양 연신 숟가락을 가져가기 바쁘다.
얼핏보면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나 장소가 학성강당이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
햄, 라면사리, 어묵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재료들임에도 이곳에서도 그다지 자주 볼수 없는 것들이다.
규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서당이라는 분위기상 아무래도 전통적인 식단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인스턴트식품이나 분식 등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던 이들 중에는 이곳에 와서 식성적응에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글공부만이 전부일 것 같은 서당이지만 실질적으로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다름 아닌 인내이다.
집을 떠나 있는 자체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겠지만 이것저것 돌아보면 참을인(忍)자가 필요할 때가 참으로 많다.
동국대 한문학과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학성강당을 찾게되었다는 김보미(21·안동)씨에 따르면 "이곳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대부분이 타지 출신이고 옛 문화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터인지라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도 처음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다 큰 딸내미가 객지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의 걱정도 크신 편이지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올바른 삶과 지혜를 배우는 것인지라 생각한 시간만큼은 꼭 채워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학성강당의 존재를 텔레비전에서 처음 알게돼 보따리를 짊어지고 무조건 찾게 되었다는 최우석(27·포항)씨 역시 "처음에는 한문이나 옛 전통 같은 것만 가르치는 곳 인줄 알았으나 안에서 직접 체험해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며 "약 5년 정도 더 머물며 이것저것 배울 생각인데 가끔 세월과의 싸움이 다소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중에는 굉장한 무형의 자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최우석씨 같은 경우는 부산동명정보대에서 유통경영을 전공하던 경영학도로 이곳에서 배운 여러 가지들은 나중에 인생을 살아가고 꿈을 실현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이렇듯 밖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학성강당의 생활은 고된 수행의 연속이다.
때문에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왔다가 눈앞에 보이는 냉엄한 현실에 당황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유생들은 그야말로 몸과 마음으로 온갖 갈등을 이겨내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태격'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져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태격'의 매력에 대해 김종회(41) 훈장은 "내공을 다지는 호흡법과 다양한 초식이 존재하는지라 하나의 무술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둘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정신과 마음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고요함과 인내의 미학을 배우는 것도 또 다른 인생이 묘비가 아니겠습니까?"는 말과 함께 껄껄 웃었다.
재조명되어야할 독립운동가 이기선생
후학들을 가르치며 고향산천을 지키고있는 김종회 훈장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있는 사항중 하나는 다름 아닌 우리지역 위인들에 대한 무관심이다.
"무엇인가를 위해 진심으로 희생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일을 자랑하거나 구태여 내세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같은 지역 내에 있던 이들, 그리고 고향사람들만큼은 거기에 관심을 가져줘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지역이 낳은 대학자 중 한명인 해학 이기선생.
황현, 이정직과 더불어 호남 3걸로 불리었던 그는 1848년 5월 25일 성덕면 대석리에서 출생한 구한말의 실학자로 일제 침략에 맞서 다각적인 방법으로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항일운동과 민중계몽에 일생을 헌신했던 인물이다.
역대 어떤 독립운동가 못지 않게 피땀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왔으나 그간 철저히 무시되어오다가 지난해 12월 26일에 이르러서야 그의 생가가 도 지방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어 원형복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부당한 세금문제 타파, 토지의 정확한 측량실시 등 현실적 사회개혁을 목놓아 외치던 실학자 이기선생은 전국에 있는 모든 토지의 정확한 측량에 사활을 걸던 중 을사보호조약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자 크게 개탄하며 이후 독립운동가의 길로 나서게되었는데, 나라를 잃게된데는 국민이 배우지 못한 점이 크다는 생각 하에 '배제학당'에서 역사·영어 등을 가르쳤다.
또한 한문의 일괄체제가 아닌 국한문을 혼용하고 반상제도를 없앨 것을 주장하였고 체육의 대중화를 통한 백성의 건강한 생활을 제창하였다.
일제의 무차별적인 외교권박탈에 직접 천황에게 상소를 하고자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선비의 자존심 상투를 싹뚝 잘라버리고 연락선을 타고 일본 본토에 갔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합일합방이 되기 직전에 굶어서 죽는 길을 택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이런 슬픈 시국에 통탄해 죽는이 하나 없으면 어찌하겠느냐?"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렇듯 후세에게 귀감이 되는 많은 업적을 남긴 이기선생이나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하는 독립운동가에는 한번도 선정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지역 입장에서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종회 훈장은 말한다.
"비단 이기선생님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학성강당이 전국 유일의 성리학 계승지라는 것도 그리고 정통무술 태격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유산이라는 것도 지역민들은 많이들 모르고 계십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부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고향에 존재하는 무형·유형의 문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때 자긍심도 자부심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정자태극권(鄭子太極拳) 고수가 학성강당을 찾은 이유는?
'태격'에 관한 설명을 할 때 김종회 훈장의 양옆으로 자리하고있는 두 인물이 있었다.
택견인간문화재 정경화 선생 밑에서 10여년간 수련을 쌓다가 98년부터 학성강당에서 '태격'을 연마하고 있다는 박근(35)씨, 그리고 서울 천호동에서 정자태극권도장을 운영하는 무도인 유승권(35)씨.
특히 유승권씨는 중국정통권법인 정자태극권을 25년 이상 수련한 인물로 90년대초 홍콩배우 이연걸이 영화 '태극권'홍보차 한국에 왔을 때 같이 무술을 시연했음은 물론 각종 방송 매체 등에서 태극권에 대한 강좌를 실시했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이다.
그런 그가 구태여 먼 지방인 우리지역의 학성강당까지 찾아온 이유는?
"태극권에 대한 자부심이 워낙 강한 편인지라 처음에는 중국무술만 깊이가 있는줄 착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덜 알려졌다 뿐이지 우리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무예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마음을 먼저배우고 그 다음에 내공을 쌓고 마지막으로 초식을 익히는 '태격'은 보통의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무예가 아니다.
조금만 배워도 일시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많은 무술 및 격투기가 있는데 굳이 어려운 학문과 좌식을 겸한다는 것은 보통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에 한번배우면 훨씬 더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 또한 '태격'이다.
내공의 존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극히 보통사람(?)인 기자에게 유승권씨가 가벼운 시범을 보여주었다.
느릿느릿한 동작의 초식운용, '과연 저런 움직임으로 복싱의 잽이나 태권도의 빠른 발차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자의 바로 눈앞에서 손발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그 동안 보아왔던 어떤 격투기의 마스터 못지 않은 빠름과 힘이 느껴졌다.
거기에 온몸이 힘을 꽉 주고 버티고있는 기자를 바로 지척에서 가볍게 밀어 연거푸 뒤로 날려버리는 엄청난 기운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다.
거기에 대해 유승권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만 보고 정통권법은 복잡하기만하지 실전용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격투기는 순간순간 동작이 끊어지는데 비해 태극권이나 태격은 굉장히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보이는 빠름과 보이지 않는 빠름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에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내공의 존재는 무예를 떠나 자신의 건강증진에도 엄청난 효과가 있습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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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원들에게 현금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