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르르…
비취색 찻잔 속으로 맑은 녹차가 담겨지기 무섭게 향긋한 향내음이 방안에 가득 퍼져갔다.

향기를 마시는 것인지 차를 마시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진한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해서인지 참으로 조용했다.

기자가 잠시 앉아 차를 마시던 곳이 교사들의 사택이라고는 하지만 한잔의 녹차와 함께 콧속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는 하루 내 지쳤던 몸과 마음을 잠시 풀어놓게 하고 있었다.

"지금은 수업시간이라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 있으면 사방이 시끌시끌할 것입니다"

기자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기라도 하는 듯 정상현 교감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한 음성으로 한마디했다.

원불교 정녀복장을 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은 탓인지 50대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앳된 인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녹차를 가장 흔한 차 중에 하나로 생각하지만 이것처럼 다양한 맛을 자아내는 차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장소에 따라 재료의 양에 따라 그리고 같이 마시는 사람에 따라 온갖 감정과 추억 그리고 기운을 끄집어내는 묘한 힘이 있거든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실현하고싶은 교육방침처럼요"

조심스레 찻잔을 내려놓고 정상현 교감을 따라 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던지라 복도이곳저곳에서 재잘거리며 장난을 치고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기자를 보는 족족 아이들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싣고 인사를 건네 왔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보다는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아는 체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밝았다. 참 밝은 분위기였다.

잘못된 선입견을 버려주세요!

지평선중학교(교장 김영봉)는 보통의 평범한 곳과는 다른 대안학교(alternative school·代案學校)이다.
이런 점은 상황에 따라 장점으로 작용하기도하고 단점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지역 내에서만 봤을 때는 그다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대안학교를 보는 시선은 아직까지는 그다지 곱지 못한 편이다.

좋게 표현해도 '정규학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대안학교라 하면 애초부터 보통의 학교생활에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시스템으로 개발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안학교를 살펴보노라면 어떤 면에서는 일반학교보다도 훨씬 나은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지평선중학교는 학생수가 적다.
각 학년에 20명씩 총 60명이 전부다. 교사의 숫자가 10여명을 넘는 것을 생각하면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5대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점은 학생개개인의 모든 면을 파악해 맞춤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교사·학생모두가 기숙사생활을 하는 점을 감안했을 때 24시간 생활지도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평선중학교는 대안학교라는 특성상 다른 곳에 비해 교육의 자율권이 많이 보장되어있다.

이런 부분을 바탕으로 학교에서는 공부 외에도 악기·검도·택견·춤 등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을 실시중이다.

거기에 예절, 마음공부 등 인성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있으며 바느질, 빨래 등 어려서부터 스스로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강한 생활력을 배운다.

많은 자유와 풍부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거기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만큼은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

대안학교를 둘러싼 한 학부모의 이야기이다.

한 아버지가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내겠다고 했다가 깜짝 놀란 아내와 가족들로 말미암아 큰 소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입 밖으로 나왔던 말을 다시 삼킬 수 밖에 없었지만 그로 인한 파장은 한참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대안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다른 부모는 말한다.

"자녀를 대안학교에 입학시킨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큰일날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면에서는 이것만큼 이기적인 생각도 없습니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 다수가 받는 것과 다른 교육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 자녀보다는 부모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겠지요. 이미 훈련되고 습득된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의 보수적인 기준에 맞설 용기가 필요합니다."

극히 일부의 예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나 그들 역시 정작 자신의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라면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김영봉(69) 교장에 따르면 "우리로서는 현재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실천·인성교육의 교육을 펼쳐나가는 중으로 사명의식과 자부심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 않다"며 "행여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분들이 계신다면 직접 학교를 찾아와 일주일 정도만 지켜보고 나서 판단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장소는 분명히 성덕면에 위치하고있음에도 안타깝게도 지평선중학교 교사와 학생 중에는 우리지역출신이 한 명도 없다.

교사야 그렇다지만 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다소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적인 우리지역 학부모들의 성향과 대안학교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도 한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평선중학교 측에서는 최대한 우리지역과 연관성을 맺고 싶어한다.
새로 만든 교가에도 학교부지의 옛 명칭인 '서송골'을 삽입하고 마을사람들과의 유대관계 및 지역농산물 먹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다가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한 학부모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은 자연의 일부로서 모든 것을 안으로 품고 있습니다. 마치 한 알의 씨앗처럼, 도토리처럼, 이미 한 그루의 멋들어진 참나무가 될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교육은 그런 것입니다. 뭔가를 주입하기보다는 그런 능력을 발굴해주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위적인 배움이 아니라 격려와 믿음임을 잊지 마십시오"

학생들과의 만남

지평선중학교에 대해 좀더 알고싶어서 무작위로 선정한 6명의 학생과 진솔한 토크를 나눠보았다.

기자는 정신연령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있어(헉!)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학생들과 편한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지평선중학교를 알게되어 스스로 찾아오게 되었다는 전중만(3학년·경북안동)군, 정해진 틀은 답답해서 못 견디는지라 이곳의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김도원(1학년·정읍)군, 이곳에서 다양한 취미를 개발해 나중에 훌륭한 간호사가 되고싶다는 김가은(2학년·익산)양, 아나운서를 꿈꾸는 깜찍한 외모의 전서영(2학년·마산)양, 그림소질이 뛰어나 예고를 목표로 열심히 입시공부중인 나혜원(3학년·춘천)양, 친구들과의 다툼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으나 이곳에서 다시 본래의 밝은 성격을 회복해 내년 로즈데이때는 결코 솔로로 지내지 않겠다는 이슬비(2학년·군산)양.

하나같이 어린 나이답지 않게 자신만이 신념이 뚜렷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계속된 객지생활로 힘들만도 하건만 자신이 맡은 일은 확실히 처리하고 시간관념에 철저한 모습에서 자유를 존중하는 동시에 자립심과 인성을 향상시키는 지평선중학교만의 교육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맑고, 밝고, 훈훈하게'

지평선중학교의 짧은 교훈에는 정말로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듯 보였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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