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만경여고교사)


제가 중학교 다니던 때 우리 집에 티비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티비 앞에 붙어살았지요.

외화나 외국풍물, 그리고 외국의 경치나 제도 등을 다루는 프로그램 앞에서 우리도 나중에 어른 되면 저기 가보자고 이야기하며 참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님은 TV에서 외화만 방영했다하면 채널을 돌리십니다.

우리가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그놈이 그놈인데 뭔 재미로 똑같은 사람이 나오는 걸 보느냐?'였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 외화 볼 때‘그놈이 그놈'같았고‘그곳이 그곳'같았습니다만 아버님은 저희들보다 적응속도가 느리셨던 겁니다.

지금 어른들도 아이들에 비해 적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혹시 아이들의 게임 메뉴얼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헤리포터나 퇴마록을 읽어보셨습니까?
아니 아이들이 즐겨 하고 있는 게임을 한 번이라도 같이 해보셨습니까? 많은 자판을 움직여서 정신없이 화면을 따라 잡는 일은 정말이지 고시공부 보다 더 힘이 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그 손가락이 누르는 자판의 기능까지 좌르르 꿰거든요.

웬만한 어른은 아이들의 게임을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게임은 마우스만 클릭하면 되는 일차원적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우주와 관련이 있는 단어나 게임용어 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능통합니다. 우리가 우리 부모 세대보다 외래어에 좀 익숙하듯이 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초등학생과 함께 읽었는데 저보다 훨씬 빨리 신들의 이름과 역할을 외우는 걸 쓸쓸히 바라보았습니다. 적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냐면 하도 불후의 명작이라서 어지간히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본지식이 있는 제가 기본지식이 전혀 없는 아이와 시합을 해서 지고 만 것입니다.

노래를 배워도 아이보다 제가 더 못합니다. 똑같이 팝송을 배우면 아이는 하루면 될 일을 저는 한 달 넘어도 안 되거든요.
한 달 걸려서라도 되었으면 체면이 좀 서겠는데 끝까지 잘 안되는 겁니다.

혹시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한다는 우스갯말 아세요?
제가 아이들이라는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을 해대는 어리석은 어른이었던 것 같습니다.

표현이 너무 격했나요. 이해해 주세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과 독서교육을 할 때에는‘아이들 앞에만 서면 제 자신은 왜 이렇게 작아지는지'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우수한 면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려는 것도 좋지만 한 수 배우는 심정으로 자연스레 상대해 보십시오.
그 아이들의 보물창고가 열릴 것입니다.

다음호예고 '패러디에 관하여'

김종수  oetet@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