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독서

김영자(만경여고교사)



중학교 다닐 때, 정말로 하기 싫은 숙제가 있었습니다.
지리 선생님이 내 주시는 우리나라 지도 그려오기입니다. 얇은 습자지를 우리나라 전도 위에 올려놓고 연필로 본을 따는 숙제는 참말이지 멀미나는 일이었습니다.
지도의 본을 뜨는 동안 꼬불꼬불 이상한 해안선은 참 미웠고요. 네모반듯하지 않은 도간 경계도 참 싫었습니다.

그런 지도를 20장씩이나 그려내는 숙제는 지금 생각해도 다시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리 선생님은 우리들이 지도의 본을 뜨는 동안에 각 지방의 위치와 산맥의 위치, 그리고 해안의 특성과 지정학적인 특성 등을 스스로 알게 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교과서에 글자로 써 있어야만 정보화가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지도의 본을 뜨라는 선생님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훗날에야 그래프나 표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프나 표가 어떤 글보다도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으며, 타당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얼마 전, 교육부에서 대입 수능에 표와 그래프가 연계된 문제가 많이 출제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꼭 대학 입시를 위해서만은 아니지요. 우리가 살면서 해득해야 하는 정보들 속에는 글로 된 것도 있지만 그림이나 사진, 표나 그래프로 처리된 것들도 아주 많습니다.

또, 그래프나 표를 그려서, 사진을 곁들여서 자기가 쓴 글의 이해를 도와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읽기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문학작품만을 읽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신문이나 연감 등의 책자를 놓고 표와 그래프를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혹시 저처럼 표와 그래프에 영 손방이신 어른은 이참에 아이와 같이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여간해서는 아이들처럼 쉽게 해득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지만요.
아이가 책을 읽고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의 감정 그래프를 그려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x축에 등장인물의 감정을 한 작품 당 다섯 내지 일곱 단계 정도로 나누고 y축에 감정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어 그리면 적당합니다.

아이들마다 그래프의 오르내리기가 다 다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같은 책을 읽어도 느끼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또, 왜 저 아이와 내가 생각이 다른지도 서로 이야기해보게 하면 좋습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고 주인공의 감정을 그래프로 그려보라고 했더니 80% 정도의 아이들이 인력거 삯을 많이 받았을 때 제일 기쁘고 아내가 죽었을 때 제일 슬프다고 그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들고 가는 길이 제일 즐겁고, 병든 아내를 홀로 두고 돈벌러 나갈 때가 제일 슬프다고 그렸습니다.

강의를 듣다가 어떤 중년 남자분이 그러대요. 당신은 각시 죽었을 때가 제일 기쁠 것 같다고요.

다음호예고 '뼈를 발라내야 살을 먹지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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