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만경여고교사)



얼마 전 저는 이사를 했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이웃집 사람들과 자주 왕래를 하기도 하고 같이 야외로 나가기도 했는데 지금 이사 온 아파트는 아직 한 사람도 모릅니다.

앞집 아줌마와 인사도 나누고 떡도 나누었으나 나는 아직 그녀의 얼굴을 잘 모릅니다.
일단은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것보다는 본능적인 경계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이웃들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고 마음속에 그들이 함께 있질 못하는 겁니다.

제가 이웃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들과 시간을 같이 보낼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아니면 그 이웃들이 내가 잘 아는 사람들하고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든지요.

독서에도 이와 똑같은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모든 정보는 우리 뇌에 들어오면, 장기기억이 되는 것과 단기기억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키마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스키마란 책을 읽기 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사전 정보입니다.

가령 건축에 대한 스키마가 있는 사람은 건축에 대한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그 정보는 친숙하기 때문에 기존의 스키마와 손을 잡고 장기기억이 됩니다. 아주 친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건축에 대한 스키마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같은 정보를 주면 그 정보는 잠깐 동안만 기억되었다가 다시 나가버립니다.

스키마가 많을수록, 비슷한 지식이 많으니까 새로운 정보들이 자연스레 결합할 확률이 높아지고요, 우리 뇌 안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지요.

제가 잘 아는 사람과 친한 이웃은 덜 경계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렇게 장기기억이 많아질수록 스키마가 많아지는 것이고요.

스키마가 많아질수록 독해력이 더 좋아집니다. 독해력이 더 좋아지면 다시 스키마가 많아지겠지요.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니까요. 스키마가 더 많아지면 그 스키마들이 지혜로 다시 전환되는 것입니다. 지혜란 일종의 사고력이니까요.

만화가나 영화감독 등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책을 아주 많이 읽어서 그 정보들을 이미지로 전환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다 같은 이치입니다.

또, 다양한 스키마를 얻기 위해서는 독서 말고도 다른 활동들도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어려서 부모님께 받은 교육 중에 '도둑질만 빼고 뭐든 다 해보라'가 기억납니다.
정말 개구지게 자란 아이들이 훨씬 창의력도 좋고 균형감각도 좋고, 사고력도 좋습니다.
부모의 지시와 간섭을 떠나 자기 주도적인 시간을 많이 가진 아이들일수록 위의 능력들이 더 좋습니다.

다만 너무 벗어나서 학창시절에 해야 할 공부마저도 안 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만, 가능한 아이에게 많은 것을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예를 들면, 여행이나 영화관람, 혹은 기타 예술활동, 심지어는 아이들끼리의 싸움질도 아이의 스키마 향상에는 도움이 됩니다.

다음호 예고 '아이의 실패를 원하는 부모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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