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팔 예총 사무국장

족히 15분은 되었으리라… 비단 한폭이 조용히 다가와 나신(裸身)을 가려준다.
헌데 이번에는 천지가 거부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20여분을 넘도록 천지 구석구석을 맘껏 애무할 수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 일행은 하산을 서둘렀다.
천지를 구경할 수 있었던 대가는 평소의 곱이었다.
팁 2000원을 포함하여 2만 2,000원이었다.
이유인 즉 특별히 부탁하였으니 그렇단다. 솟구쳐 오르는 황당함에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기가 어려웠다.

바가지요금을 강요하는 이유로는 타당치 않게 느껴져 잘못된 계산에 대해 한마디하고 나섰으나 천지를 볼 수 있었다는 흥분이 채 가라앉기 전이여서 그런지 "됐다! 됐어 그냥 줘!" 하는 다수의 소리에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천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가이드의 헌신(?)적인 노력의 덕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일정에 없던 시간을 백두산에서 사용하였기에 용정을 향하는 발길을 당겨야 했다.

장백미인송들의 사열을 받으며 이도백하(백두산 아랫마을)를 지나 묘향산 전시관(대교)에 도착했다.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인데 우황청심환을 팔고 있었다.
연단 위에 북한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만약에 북쪽이 육로를 개방하면 많은 돈을 들여 중국을 경유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 돈이 북쪽으로 돌아간다면 서로가 좋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아쉬움이 밀려왔다.

무엇인가를 살 기분이 들지 않는지라 여자판매원과 잡담만 하다가 나왔다.
떠나는 우리를 문밖까지 따라나와 흔드는 손끝이 멀어지고 있었다.
선구자들의 얼이 살아 숨쉬는 용정을 향하는 길도 3∼4년 전에 포장을 끝내 그런데로 좋은 편이였다.

용정의 인구는 27만 5천명 정도인데 우리민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자그마치 60%라고 한다.
무척이나 넓게 생각했던 혜란강도 상류인지 샛강정도로 보였다.
혜란교(?)를 지나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현 용정중)에 도착하였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둘러보며 28세 젊은 나이에 일본군국주의에 의하여 세상을 떠난 고인에 대하여 머리 숙여 명복을 빌었다.
가유점(주유소) 굽은 길 돌아 멀리 일송정이 보였다.
헌데 일송정 푸른솔이 아닌 정자만 어른거렸다.
이유인즉슨 일본인들에 의해 소나무는 고사됐고 대신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워 기념하고 있단다.

자동차는 두만강 줄기를 곁에 하고 달리고 또 달렸다.
강 건너 멀리 밭 메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고 지척의 냇가에서 목욕하는 어린이들도 보였다.

왜 이쪽(중국) 농작물은 상태가 좋은데 저쪽(북한)은 저렇게 형편없는지 몰라 기왕이면 저쪽 농사가 더 잘돼야 하는데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북한은 현존하는 우리의 주적이 분명한데도 여기저기서 "그러게 말야" "그래" 하는 소리로 잠시 차내가 술렁거렸다.

북한과(함북 남양시) 철교로 이어진 도문시 강변공원에 도착하여 개미새끼하나 보이지 않는 북쪽을 등지고 촬영을 했다.

'여기는 이토록 북적대는데 저곳은 왜 저토록 굳게 빗장을 걸고 밖을 내볼 줄 모르는가…'

같은 동포로써 진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다음주 예고: 거대한 나라의 거대한 흔적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