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서고등학교 3학년 정미진

무상한 빗줄기가 소리 없이 내리는 밤. 그다지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런 봄의 선율에 마음이 자분자분 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따라 빗소리가 유난히 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 곰곰히 그 까닭을 생각해 보니 얼마 전,내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 한 권의 소설 때문인 듯 하다.

난쟁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쏠려 부담 없이 읽게 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짧지만 10여 년 동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해서 조용히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줬던 작품이다.

근대화의 소외계층으로 상징되는 주인공 김불이. 그는 과거의 인물이 아닌,지금도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또 다른 난쟁이가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부익부 빈익빈 시대'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거대한 인간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왜소한 난쟁이에 불과한 시대. 시대는 흘러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계속 난쟁이로 남아 있는 김불이와 같은 사람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다.

낙원구 행복동의 빈민층 가정의 가장 김불이, 그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다. 몰락해 가는 가운데 그것을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 당시 삶의 고통과 현실을 잘 나타내었다.

117cm, 32kg의 왜소한 외모,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다. 그나마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살던 작고 초라한 집이 헐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도 저항 한번 제대로 할 수없다. 현실의 아픔으로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써본다. 그러나 그런 안간힘은 힘 있는 앞에서 아무 기력도 발휘할 수 없는 난쟁이의 헛발질 같은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힘없이 무너지는 집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땅에서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현실의 괴리로 그토록 갈망하던 달나라를 꿈꾸며 이주하기를 소원하고 결국 공장의 굴뚝 위에서 작은 공 하나를 쏘아 올렸다.

그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기도 전에 그의 아픔과 절망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온다. 제발 그의 작은 소망이 대기권 밖으로 떠나갈 때 '펑'하고 터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힘없는 자라도 그의 희망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다. 희망이 있는 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새로운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울 것이다. 과거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것,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의 가난은 자신이 못난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직도 많은 난쟁이를 배출시키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숨죽이고 살아가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시대의 새로운 난쟁이이다.

내가 여자이어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여긴 인물은 그의 딸 영희이다. 영희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여성을 대표한 인물이다 .

가족을 위해 순결을 잃는 희생을 당하고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영희가 아파하는 고통은 자신의 희생이 아닌 평생을 난쟁이로 살아온 아버지와 가족들의 삶의 아픔인 듯하다.

요즘 누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려들겠는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영희의 그 희생정신은 이 땅의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 책은 차분한 스토리로 진행되지만 커다란 여운을 전해 주었다.스케일이 큰 거창한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일상적 깨달음을 줬다.또한 진한 가족애는 바쁜 일상 속에서 읽어가고 있는 가족간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경제 발전을 지금의 우리나라를 성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소외계층이 생겼고 그들에게 남긴 상처들은 무엇으로도 보장받을 수 없는 흉터로 남아있다.

그때의 모습을 잘 보여준 난쟁이 김불이. 그는 이를 악문 자신의 인생과의 싸움에서 약자로 서서 결국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에겐 더 큰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원한 해피엔드의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의 가족들의 희망이 책 속 깊숙이 숨쉬고 있었고 그것은 내게 따뜻함을 안겨주는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사랑이 결핍되어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난쟁이...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모습이 우리 마음 속에 내재되어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아름답지 못한 난쟁이, 또한 이러한 정신의 불
구를 깨달지 못하고 물질적 이기심만을 향해 달려가는 내 자신.

김불이 그를 통해 내 자신의 내재된 난쟁이다운 모습에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전한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지금가지의 삐뚤어진 삶과 정신을 지닌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었다.

그는 난쟁이가 아니라 거센 비바람과 사람들의 발자국에 눌려 다시 일어서는 잡초처럼 거짓과 위선이 가득 찬 세상에서 밟히면 홀로 일어나 사람다운 모습을 지켜가려 노력하는 거인으로 느껴졌다.

만연하는 배금풍토와 물질문명의 홍수속에서 정작 가치 있는 것들이 상실되어 가는 요즈음, 서로가 서로를 둘러보고 베풀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그립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내 모습을 반성해 본다. 그리고 그들의 절규를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