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윤
전교조 농어촌 교육대책 위원장

안 밖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그야말로 누구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어찌해보기 어려운 국면이 지속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한미 FTA(자유무역)의 홍역을 다 치루기도 전에 소리 없이 잇달아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안이 교육부의 로드맵으로 발표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인상들을 갖게 된다.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까지 농어촌 소규모 학교로서 정원 60명이하의 685개 학교를 통폐합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100명이하의 소규모학교 1976개 학교를 폐쇄하려다 그나마 축소한 사업이라니 농어촌 학교와 관련한 변화의 속도나 규모가 예측한 이상이 될 것 같다.

이 정책기조에 의해서 전북의 경우에는 2009년까지 133개 학교를 통폐합할 계획이며 김제의 경우에는 초등13개교, 중학교 2개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전한다. 이와 같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면들을 면면이 살펴보면 FTA는 향후 한국사회의 세계화의 큰 틀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하는 세계사의 주류를 지향하려는 경향이라고 하고,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사업은 그 동안 비능률적인 교육체제를 보다 경쟁력 있고 내실 있는 교육을 담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들 한다. 말하자면 불필요한 경비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면 위의 두 사안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분모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정부간섭배제, 시장의 기능 확대, 복지예산축소)에서 비롯된 정책이라는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로서 파장은 우리의 텃밭이 이슈의 한복판에 서있게 된 것이다.

하나는 생존권적 위기를 조장한 화살이 되어 날아오고 있고 또 하나는 교육위기 내지는 공공성의 한 축이 허물어져 가는 징후로서의 전주곡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태생적으로 국가나 개인은 상황적 모순과 차이를 가지고 태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세상살이를 돌이켜보면 전라도 말로 "얄 잘 없다"는 매몰찬 일성을 듣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국내산 쌀값 생산가의 1/4정도 밖에 되지 않는 외국산 쌀과 관세 없이 경쟁하라는 것도 야속하지만 인근에 있는 학교를 앞에다 두고서도 애들이 없어 학교를 통폐합시키겠다하여 억지로 먼 학교를 가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여간 서러운 게 아니다. 사실, 애들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농촌 여건이 어려워 사람들이 떠난 흔적으로 소수가 남았다는 표현을 그리 정리한 것이 분명하다.

코흘리개 애들이 시장원리에 적응하지 못해 이미 정리 해고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헌법 제31조에 모든 국민들은 능력에 맞게 차별이 없는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법조항은 아마도 장롱 속 깊은 어딘가에 처박아 놓은 모양이다.

최규호 교육감의 공약사항에 "농어촌 소규모학교 통폐합 반대"를 외치며 지역민들을 자극하여 지지받아 당선까지 되었건만 당시의 공약을 빌미삼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상 법적 구속력도 없고 이런 일들에 낯 설은 일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양치기소년의 흉내 내기의 인상을 순진하게 수용해버린 우리의 순박함이 야속해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국가가 사안들마다 경제논리로 비약해서 헌법상의 권리를 침탈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제 어렵사리 함께 주권 지키기에 힘이라도 얻을 라 치면 농촌에는 이미 저항의 손들기마저 버거워하는 어르신내들이 애들의 보호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때 문득 부도덕한 시장(市場)의 정의로움을 이야기한 순진한 사람들이 싫어질 뿐만 아니라 이미 인간의 얼굴을 잊어버린 소위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들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저항할 수 없는 이들과 경쟁할 수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든가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견주어 논의해야 할 것이겠지만 이들에게 들이대는 일반적 정의의 이름하에 부과하는 책무성은 이미 폭력화 되었거나 적어도 타락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무장한 '괴물'들이 사정없이 다가와 문득 우리 앞에 서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는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왜곡된 자본의 흐름이나 소위 경쟁력이라는 것들이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란 말로 대체한 자본의 정체성에 대해 새삼 되씹어 보게 되며 이에 대한 성찰 노력의 결과물로서 "생존주권" "교육주권"이라는 말을 앞세워 지금 당장은 대항해보겠지만 혹 이러한 노력들이 "세계화"라는 경향성의 소용돌이 속에 주목받지도 못한 채, 그냥 묻혀가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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